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올해 초 2%대 초반에서 잠잠하던 물가 지표가 중동 사태라는 외부 변수를 만나 흔들리는 모습이다. 국제 유가 상승세가 국내 석유류 가격에 본격적으로 전이되면서 전체 물가 상승폭을 키웠다. 다만, 정부의 가격 억제 정책과 가공식품 출고가 인하, 농산물 공급 확대 등이 맞물리며 폭발적인 인플레이션으로의 전이는 막아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제유가 직격탄 맞은 에너지 물가, 석유류 9.9% '폭등'
국가데이터처가 2일 발표한 '2026년 3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년 전보다 2.2% 상승했다. 이는 올해 1월과 2월 연속으로 2.0%를 기록하며 안정화 기조를 보이던 물가 흐름이 다시 상승세로 돌아섰음을 의미한다. 이번 상승의 주된 원인은 단연 '에너지 가격'이다.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심화되면서 국제유가가 급등했고, 고환율 기조까지 겹치면서 국내 석유류 가격은 전년 동월 대비 9.9% 올랐다. 이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가 한창이었던 2022년 10월(10.3%) 이후 3년 5개월 만에 가장 가파른 상승 곡선이다. 품목별로 살펴보면 경유가 17.0% 급등하며 산업계와 운송업계의 부담을 키웠고, 휘발유 역시 8.0% 상승하며 가계 경제에 압박을 가했다. 특히 서울 지역 일부 주유소의 휘발윳값이 리터당 1,900원을 돌파하는 등 현장에서 느끼는 체감 물가는 지표보다 훨씬 심각한 수준이다.
정부 '최고가격제' 긴급 투입… 물가 상승의 방어막 역할
자칫 3%대 진입까지 우려되었던 물가 지표가 2.2% 수준에서 방어된 데에는 정부의 정책적 개입이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정부는 유가 급등에 대응해 '석유 최고가격제'를 전격 시행했으며, 2차 시행 사흘째를 맞이하며 시장의 가격 급등세를 억제하는 효과를 냈다. 데이터처 관계자는 "석유류가 이번 달 물가 상승의 가장 큰 기여 요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최고가격제 시행이 가격 인상 압력을 상당 부분 완화하는 충격 흡수원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공업제품 부문에서는 가공식품의 오름 폭 축소가 눈에 띈다. 지난달 가공식품 물가 상승률은 1.6%로 집계되었는데, 이는 2024년 11월(1.3%) 이후 1년 4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설탕과 밀가루 등 주요 원재료의 출고가 인하가 단행되면서 가공식품 전반의 가격 안정에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유가 급등이라는 악재 속에서도 식탁 물가와 직결되는 가공식품 분야에서 상승 폭이 둔화된 점은 긍정적인 신호로 해석된다.
농산물 가격 하락 vs 축수산물 상승… 엇갈린 신선식품 향방
먹거리 물가는 품목에 따라 뚜렷한 온도 차를 보였다. 농산물 가격은 전년 동월 대비 5.6% 하락하며 물가 하락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특히 채소류 가격이 13.5% 급락하며 전체 지수를 낮췄다. 이는 딸기와 오렌지 등 제철 과일과 채소류의 공급량이 원활하게 유지되면서 가격 하락 폭이 확대된 결과다. 신선식품지수 전체로는 6.6% 하락해 석 달 연속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갔다.
반면 축산물과 수산물은 각각 6.2%, 4.4% 상승하며 농산물 하락분을 일부 상쇄했다. 농축수산물 전체로 보면 0.6% 하락했으나, 단백질 식품군에서의 가격 상승세는 여전해 소비자들이 느끼는 장바구니 물가 부담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물가 기여도를 보면 농산물은 전체 물가를 0.25%p 끌어내리는 효과를 냈지만, 석유류(0.39%p)와 개인서비스(1.09%p)의 상승 기여도가 이를 압도했다.
근원물가 안정세 지속… 서비스 물가 기여도 여전히 높아
거시경제적 관점에서 긍정적인 대목은 근원물가의 안정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근원물가 지표인 '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지수'는 2.2%를 기록하며 전월보다 0.1%p 낮아졌다. 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 지수 역시 2.3%로 상승 폭이 둔화되었다. 이는 최근의 물가 반등이 경기 과열이나 수요 측 요인이 아닌, 국제 유가와 같은 일시적인 공급망 충격에 기인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다만 서비스 물가는 2.4% 오르며 견고한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개인서비스 물가는 3.2% 상승하며 전체 물가 기여도에서 가장 높은 비중(1.09%p)을 차지했다. 외식 물가는 2.8%, 외식 제외 개인서비스는 3.5% 상승하며 인건비 및 임대료 상승분이 서비스 가격에 반영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공공서비스 부문 역시 1.0% 상승하며 전반적인 서비스 가격 상승세에 일조했다.
이두원 데이터처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브리핑을 통해 "3월 물가는 대외적 요인인 석유류 가격 폭등이 전체 지수를 끌어올린 형국"이라며 "농산물 공급 확대와 가공식품 출고가 인하 등 하방 요인이 존재했기에 시장의 예상치(2.4%)보다 낮은 수준에서 관리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향후 물가 전망에 대해서는 "중동 사태의 전개 양상과 국제 유가 추이가 향후 물가 안정의 최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