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이 미국발 외교적 신호에 반응하며 큰 폭으로 하락했다. 2025년 5월 15일 기준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대비 25.7원 내린 1,394.5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는 미국의 원화 절상 요구설이 시장에 퍼지며 달러 수요가 감소한 데 따른 것으로, 외환시장은 하루 동안 극심한 변동성을 나타냈다.
이날 새벽, 외신 보도를 통해 한미 양국 외환 당국자 간 환율 문제를 주제로 대면 접촉이 있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서울 외환시장의 야간 거래에서 환율은 한때 1,390.8원까지 급락했다. 그러나 이후 이 협의에서 실제 환율이 의제로 다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개장 초 1,410.9원으로 반등했다. 하지만 장중 다시 하락 압력이 커지며 오후 12시38분에는 1,391.5원까지 밀리며 변동성이 커졌다.
시장에서는 미국이 간접적으로 원화 절상을 요구하고 한국 정부가 이를 수용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소재용 신한은행 연구원은 “미국이 달러 약세 정책을 선호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며, 이에 따라 한국에도 원화 강세를 유도하려는 기류가 감지된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시장 참여자들이 이에 대한 정부 대응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환율 하락은 단순한 수급 요인을 넘어 통상 외교의 영향력이 본격 반영되기 시작한 결과로 풀이된다. 특히 오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등에서 통상 및 외환 관련 논의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외환시장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이민혁 KB국민은행 연구원은 “APEC 회의가 가까워질수록 환율 정책이 협상의 도구로 활용될 가능성이 커지며, 원화는 중기적으로 절상 압력을 받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글로벌 외환시장에서도 달러화 약세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이날 100.709를 기록했다. 이는 전날 한때 100.266까지 하락한 뒤 101선을 회복했으나 다시 약세로 전환된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하 가능성이 시장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서 달러 강세가 제한된 가운데, 유럽·아시아 통화가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이는 영향으로 해석된다.
특히 일본 엔화도 강세를 나타내며 원/엔 환율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날 오후 3시30분 기준 원/엔 재정환율은 100엔당 956.35원으로, 전일 대비 9.81원 하락했다. 같은 시간 기준 엔/달러 환율은 145.68엔으로 1.01엔 하락해, 엔화 강세와 달러 약세가 동시에 작용하고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단기적 원화 강세 흐름에 대한 섣부른 예단을 경계하고 있다.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 미 금리정책 방향성, 지정학적 리스크 등 다양한 외부 변수가 상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환시장 관계자는 “환율이 외교적 이슈에 영향을 받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으나, 정책 당국의 직접적인 개입이나 공식적 입장 발표가 없는 한, 단기적 흐름에 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번 원/달러 환율 급락은 단순한 환율 움직임을 넘어, 외환시장에 있어서 ‘정책 시그널’의 중요성이 다시금 부각되는 사례로 평가된다. 향후 한미 간 외환정책에 대한 추가 발표 여부, APEC 회담의 실제 협상 내용 등에 따라 환율 방향성은 재조정될 가능성이 높다.
용어해설
코픽스(COFIX): 국내 은행들이 조달한 자금의 평균금리를 기반으로 산출되며, 주담대 변동금리의 기준으로 사용되는 지수.
달러인덱스: 미국 달러의 국제적 가치를 주요 6개국 통화(유로, 엔화, 파운드 등)와 비교해 산출한 지수.
재정환율: 외국 통화를 두 개 환율(예: 엔/달러, 원/달러)을 통해 간접 계산한 환율. 예: 원/엔 = 원/달러 ÷ 엔/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