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은 5월 15일 한국개발연구원(KDI)과 공동 개최한 심포지엄에서 주택연금 및 민간 역모기지 확대가 국민 소비 여력을 늘리고 경제 성장 및 소득 재분배 개선에 기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황인도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금융통화연구실장은 '주택연금과 민간 역모기지 활성화를 통한 소비 확대 및 노인 빈곤 완화 방안'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관련 내용을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주택연금 활성화는 소비 진작을 유도함으로써 실질 국내총생산(GDP)을 0.5∼0.7% 끌어올릴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으며, 이는 고령층의 생활 안정뿐만 아니라 거시경제 전반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가입률이 현재보다 대폭 상승할 경우, 노인빈곤율은 3∼5%포인트(p) 하락할 것으로 추정됐다. 이는 약 34만 명의 고령층이 빈곤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 효과를 의미한다.
주택연금은 만 55세 이상의 주택 보유자가 해당 주택을 담보로 제공한 뒤, 거주를 유지하면서 매달 노후 생활자금을 연금 형식으로 수령하는 제도다. 연금 수령액은 주택의 가치, 가입자의 연령, 금리 수준 등에 따라 결정된다.
한국은행은 전국 55∼79세 주택보유자 3,82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통해 주택연금에 대한 국민 인식을 분석했다. 조사 결과, 전체 응답자의 35.3%가 향후 주택연금 가입 의사를 밝혔다. 더욱이 주택연금 상품 설계를 개선하거나 관련 정보를 충분히 제공할 경우, 가입 의향 비율은 평균 41.4%까지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주택가격의 향후 상승분이 연금액에 반영되도록 상품을 설계할 경우 가입 의향은 39.2%로 늘었고, 상속 요건을 완화하면 41.9%, 가입 이후 집값이 오르더라도 손해를 보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전달할 경우 가입 의향은 43.1%로 상승했다. 이는 소비자의 신뢰 회복과 정보 접근성이 가입률 제고에 중요한 역할을 함을 시사한다.
한편, 한국은행은 주택연금 제도가 활성화될 경우 경제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기 위해 한계소비성향 및 거시계량모형을 활용했다. 분석 결과, 가입 의향이 있는 276만 가구(41.4%)가 모두 실제 가입에 나서는 낙관적 시나리오에서는 실질 GDP가 0.5∼0.7% 상승할 수 있으며, 노인빈곤율은 3∼5%포인트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약 34만 명의 고령자가 빈곤선에서 탈출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반대로, 높은 가입 의향에도 불구하고 실제 가입률이 현재 수준(1.89%)에서 크게 개선되지 않을 경우에는 효과가 미미해질 수 있다. 한국은행은 보수적 시나리오로 11만7천 가구만이 신규 가입하는 경우, 기대되는 경제 성장 및 분배 효과는 낙관적 시나리오 대비 20분의 1 이하로 감소한다고 분석했다.
또한, 역모기지 시장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영국 수준을 기준으로 삼는 중간 시나리오에서는 약 37만 가구가 신규 가입할 것으로 가정하고, 이 경우 실질 GDP는 약 0.1% 증가하고 노인빈곤율은 0.5~0.7%포인트 낮아질 것으로 예상됐다.
한국은행은 이러한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정책적 개선 방향을 제시했다. 우선, 주택가격 변동을 반영하는 신상품 개발, 상속 요건 완화, 세제 혜택 제공 등으로 주택연금의 매력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가입 후 손해 가능성'에 대한 소비자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홍보 강화도 필요하다.
더불어, 민간 금융기관의 역모기지 상품이 주택연금의 보완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요구된다. 특히, 비소구형(채무 초과 시 추가 상환 책임 없음) 상품의 출시, 종신 지급 보장 등의 기능을 갖춘 상품 개발이 중요하다고 지적됐다.
현재는 공공기관 중심의 주택연금 공급이 이뤄지고 있으나, 생명보험사 등 종신 금융상품 운영에 익숙한 민간 금융사의 시장 진입을 장려하고, 정부와 민간 협회의 인프라 구축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이번 연구는 고령화 사회에서 주택이라는 자산을 활용해 노후 생활의 안정을 도모하고, 동시에 경제 전반의 소비 여력을 확대함으로써 성장과 분배라는 이중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방법으로 주택연금 제도가 주목받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용어해설
주택연금: 만 55세 이상의 주택 보유자가 주택을 담보로 제공하고 거주를 유지하며 매달 연금 형태로 생활자금을 수령하는 제도.
역모기지: 고령자가 주택을 담보로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을 받고, 사망 시 해당 주택을 처분해 대출을 상환하는 구조의 금융상품.
비소구형 상품: 채무자가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할 경우, 담보 자산 외에는 채무 상환 책임이 없는 금융상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