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구글 고정밀 지도 해외 반출 8월 최종 결정…안보·산업·조세 형평성 고려한 정밀 심사
정부가 구글의 고정밀 지도 해외 반출 요청에 대해 오는 8월 11일까지 결정을 내릴 예정이다. 이번 조치는 단순한 기술 데이터의 수출을 넘어, 국가 안보와 산업 경쟁력, 조세 형평성 등 다면적인 영향을 고려한 고도의 정책 판단이 요구되는 사안으로, 업계와 학계, 정치권 모두에서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국토교통부 및 산하 국토지리정보원은 5월 11일, 구글이 요청한 5천 대 1 축적의 고정밀 지도 데이터를 해외 데이터센터로 이전하는 문제에 대해 당초 5월 중순까지 심사를 마무리할 예정이었으나, 이를 60일 연장해 8월 11일까지 검토를 이어가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는 6·3 대선이 임시공휴일로 지정되면서 심사 기간 산정에서 제외된 날짜를 감안한 조치다.
이번 심사는 국토부를 포함해 국방부, 외교부, 통일부, 국가정보원, 산업통상자원부, 행정안전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총 8개 부처로 구성된 '측량성과 국외 반출 협의체'에서 맡고 있다. 이 협의체는 만장일치 원칙을 따르고 있어 어느 한 부처라도 반대할 경우 반출 허가가 어렵다. 특히 안보 관련 부처인 국방부와 국가정보원의 입장이 관건이 될 전망이다.
구글은 지난 2월 18일 국토지리정보원에 고정밀 지도 데이터의 해외 반출을 공식 요청하며, 보안시설에 대해 블러(blur) 처리를 하겠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러한 조건이 여전히 불충분하다는 입장이다. 정부가 요구한 블러 처리를 위한 좌푯값 제공 요청은 오히려 보안시설의 위치를 정확히 노출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따라 정부와 구글 간에 실무적인 조율도 아직 원활하지 않은 상황이다.
구글은 현재 2만5천 대 1 축적의 공개 지도 데이터를 위성 및 항공사진과 결합해 서비스하고 있지만, 이는 네이버와 카카오 등 국내 업체의 지도 품질과 비교해 한참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에 따라 구글은 지도 정밀도를 높여 자율주행차, 스마트시티, 관광 내비게이션, 쇼핑 데이터 최적화 등 다방면에 활용하겠다는 전략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요청이 구글의 글로벌 AI 비즈니스 전략의 일환으로 해석하고 있다.
김상배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지난 8일 열린 국회 토론회에서 '구글이 고정밀 지도 데이터를 요구하는 배경에는 AI 학습용 데이터를 확보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우위를 선점하려는 목적이 있다'며, '이 데이터가 해외로 반출되면 한국의 AI 산업 경쟁력에 직접적인 타격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지도 데이터는 단순히 위치 정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율주행차와 드론, 정밀 농업, 공간 데이터 기반 마케팅 등 다양한 미래 산업에서 원천 기술로 활용된다. 고정밀 지도는 특히 AI 훈련 데이터로 사용될 경우 그 전략적 가치는 더욱 커지며, 민간과 군사 모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지도 반출은 단순히 기업 간 기술 공유 차원이 아니라, 국가적 전략자산의 외부 이전이라는 점에서 정부의 신중한 대응이 요구된다.
한국공간정보산업협회 관계자는 “외국 기업은 국내에서 막대한 이익을 가져가면서도 납세 의무를 다하고 있지 않지만, 국내 기업은 규제를 준수하고 세금을 충실히 낸다”며 “이런 상황에서 지도 국외 반출이 허용되면 조세 형평성에도 불균형이 초래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국내 기업들은 고정밀 지도 데이터를 활용할 때 정부 기준에 따라 위장, 블러, 저해상도 등 보안처리를 의무적으로 수행하고 있으며, 이 중 위장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반면, 구글은 블러 처리만 하겠다고 밝혀 정부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러한 처리 기준의 차이 역시 국내 기업의 역차별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
해외 주요국들도 지도 데이터의 국외 반출에 대해 엄격한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인도는 안보를 이유로 자국 지도 데이터를 해외로 반출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으며, 중국은 민간기업이 수집한 지도 데이터를 반드시 국가 서버에 저장하고, 국외 이전을 법적으로 제한하고 있다. 독일, 프랑스 등 유럽 주요국도 고정밀 지도 데이터를 특정 기준 이상으로 제공할 경우 사전 승인 절차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 이는 지도 데이터가 국가 안보뿐만 아니라 산업 기밀로도 작용할 수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한국 역시 유사한 논리를 기반으로 구글의 요청을 정밀하게 검토하고 있는 것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정부가 요구한 보안처리에 대해 구글이 아직 수용하지 않고 있어 신중하게 접근할 수밖에 없다”며, “이번 결론은 단기적 기술 문제가 아닌 장기적 안보와 산업 정책에 기반해 내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구글의 세 번째 지도 반출 요청이 한국 정부의 입장을 바꾸게 될지, 또는 기존과 같은 불허 결론으로 귀결될지에 귀추가 주목된다.
📘 용어 해설 (확장 포함)
고정밀 지도: 5천 대 1 축적 등 높은 정밀도를 갖춘 지도 데이터로, 자율주행, 드론, AI 학습 등에 핵심적으로 활용됨.
측량성과 국외 반출 협의체: 국토부 등 8개 정부 부처가 참여하는 심의기구로, 고정밀 지도의 국외 반출 여부를 결정함.
조세 형평성: 국내외 기업 간 납세 의무의 형평성을 말하며, 지도 반출 여부에 따라 경쟁 여건에 영향을 미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