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아시아 통화시장이 전례 없는 급등세를 보이며 금융시장 전반에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통상 위기의 징후는 통화가치 급락에서 비롯되지만, 이번에는 주요국 통화가 빠르게 절상되며 외환 운용에서의 대규모 손실과 시스템 리스크가 동시에 부각되고 있다. 특히 홍콩의 대규모 시장 개입과 대만의 달러 익스포저 문제가 맞물리며, 아시아 금융 시스템 전반의 구조적 취약성이 드러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만 달러는 최근 1988년 이후 최대폭으로 절상되며 시장을 흔들었다. 당초 대만의 특정 반도체 생명공학 회사가 보유한 약 700억 달러 상당의 외화 자산 문제가 시장 불안을 자극했지만, 실제로는 대만 정부가 미국과의 무역 협상에서 유리한 조건을 이끌어내기 위해 자국 통화 절상을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해석도 뒤따른다. 이러한 대만의 환율 움직임은 중국 위안화, 말레이시아 링깃 등 주변 통화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동남아 전반의 외환시장 불안정성을 고조시켰다.
그러나 이번 통화시장 변동의 중심에는 대만보다 홍콩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 달러에 환율을 고정하는 ‘페그제’를 채택하고 있는 홍콩은 통화가치가 일정 범위를 벗어날 경우 정부가 직접 외환시장에 개입해야 하는 구조적 한계를 갖고 있다. 실제로 홍콩 통화청(HKMA)은 단 1주일 만에 1,100억 홍콩 달러(약 150억 미국 달러)를 매도하며 시장에 개입했으며, 이는 작년 일본은행이 두 차례에 걸쳐 엔화 안정을 위해 투입한 총액보다도 50%나 많은 수준이다.
흥미로운 점은, 대만의 달러 익스포저가 홍콩보다 크지만, 실제 시장 충격은 홍콩에서 더 크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는 페그제를 유지하기 위한 구조적 개입이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비롯되며, 시스템 리스크가 시장 수급의 문제가 아니라 정책 구조의 한계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홍콩 금융기관들의 외화 자산 구성과 레버리지 구조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한 번의 급격한 환율 변화가 연쇄적인 유동성 위기로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번 사태는 중국 위안화의 캐리 트레이드와도 맞물려 있다. 위안캐리 트레이드는 공식 용어는 아니지만, 투자자들이 위안화로 환전하지 않고 달러를 보유하며 환차익을 노리는 전략을 의미한다. 이 전략이 청산될 경우 위안화로의 대규모 환전이 이뤄지며 시장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는데, 이번 대만과 홍콩 이슈로 인해 그러한 캐리 트레이드가 청산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작년 미국과 일본 간의 환율정책 교감 이후 나타났던 ‘엔캐리 청산’과 유사하게, 이번에도 미국과 중국 간의 비공식적 조율 가능성이 제기된다. 실제로 미 재무장관이 중국과의 무역 관세 정책 협의를 언급한 이후 통화 변동성이 급등했고, 중국 인민은행의 시장 개입 정황도 일부 포착되면서 이러한 시각에 무게가 실린다.
이러한 움직임은 단순한 환율의 문제가 아닌, 글로벌 통화 정책과 구조적인 자산 운용 전략의 변화로도 해석할 수 있다. 2010년대 양적완화(QE) 시기에는 달러가 풍부했고, 저금리 환경 속에서 미국채 매수 열풍이 일었다. 하지만 팬데믹 이후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이 동시에 진행되며 달러 자산은 가격 하락과 환차손이라는 이중 리스크에 노출되었다. 이는 특히 외환보유고 운용에서 달러 비중이 높은 아시아 국가들에 더 큰 손실로 이어졌다.
한국 역시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말까지 이어진 원/달러 환율 안정세 속에서도 외국환 보유액의 달러 편중 현상은 심화됐고, 최근 급등한 아시아 통화 흐름 속에 원화의 변동성도 동반 상승했다. 특히 국내 금융시장 휴일 중에도 원/달러 선물환 시장에서 큰 폭의 변동이 관측되어, 외환시장에 대한 민감성이 크게 높아졌음을 보여준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아시아 통화시장 변동성이 암호화폐 시장, 특히 스테이블 코인의 안정성과도 연계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스테이블 코인은 법정통화나 국채에 가치가 고정되어 있는 구조인데, 이번처럼 기초 자산인 통화나 채권 자체의 변동성이 커질 경우, 스테이블 코인 가치의 안정성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아시아 통화의 시스템 리스크가 곧 디지털 자산 안정성 위협으로 전이될 수 있는 셈이다.
앞으로 시장의 관심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OMC)의 금리 결정과 통화정책 방향에 쏠릴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연준의 정책 발표가 단기적으로는 시장을 진정시킬 수 있지만, 이번 변동성이 단순한 해프닝이 아닌 시스템 리스크의 서막일 수 있다는 점에서 경계심을 늦춰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특히 차기 연준 의장 후보 중 긴축 성향의 인물이 거론되고 있다는 점은 아시아 외환시장에 또 다른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결론적으로, 이번 아시아 통화시장의 이상 급등 현상은 단기 환율 변동 그 이상을 의미한다.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금융 시스템의 취약점이 드러났고, 아시아 전반의 외환 운용 전략과 통화정책 구조에 대한 재검토가 불가피한 시점이다. 단기 안정책보다 중요한 것은 중장기적 금융시스템 내성 강화이며, 이는 각국 중앙은행과 정책당국의 유기적 협력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용어 해설
페그제(Pegged Exchange Rate System): 특정 통화에 자국 통화의 환율을 고정하는 환율제도로, 환율 안정성을 제공하지만 외환시장 개입이 불가피한 구조적 한계가 존재함.
위안캐리 트레이드(Yuan Carry Trade): 달러 강세 기대 속에 위안화 환전을 지연하고 달러를 보유하여 환차익을 노리는 투자 전략.
스테이블 코인(Stablecoin): 통화나 국채 등 실물 자산에 가치를 고정시켜 가격 변동성을 줄인 암호화폐 유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