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작성일 : 2025-08-15 | 수정일 : 2025-08-15 | 조회수 : 29 |
3·1운동의 물결 속에 수많은 이름 없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거리와 장터, 교회와 학교에서 만세를 외쳤지만, 대부분의 목소리는 기록되지 못한 채 역사 속 파동처럼 흩어졌다. 그러나 그 파동이 한 순간, 하나의 뚜렷한 형체로 응고되는 일이 있었다. 1919년, 천안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를 외친 17세의 소녀 유관순. 그날 이후 그녀의 이름은 단순한 개인이 아니라, 청소년 여성 지도자라는 새로운 얼굴로 역사 앞에 드러났다.
양자역학의 관측자 효과는 입자가 관측되기 전에는 여러 가능성의 파동으로 존재하다가, 관측 순간 하나의 상태로 결정된다고 말한다. 유관순의 삶도 그와 닮아 있다. 수많은 독립운동가 중 한 사람이었던 그녀는, 아우내 장터 만세 시위와 옥중의 당당한 태도를 ‘관측’하는 눈 앞에서 비로소 명확한 상징이 되었다. 재판정에서 일본 재판관을 향해 굴하지 않고 시선을 고정한 순간, 그리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끝까지 꺾이지 않은 목소리. 그것은 세계가 주목하는 ‘하나의 상태’로 그녀를 결정지었다.
관측은 대상을 바꾸고, 대상은 관측자를 변화시킨다. 당시 유관순의 행동을 지켜본 사람들은 그 용기를 자신의 것으로 삼았다. 해외 선교사 보고와 외교 문서에 실린 그녀의 이야기는 태평양 건너까지 퍼졌고, 수많은 이들이 조선의 독립이라는 가능성을 보다 현실적인 미래로 느끼게 됐다. 마치 실험 장치 속에서 파동이 입자로 수렴하듯, 희미했던 가능성이 그녀를 통해 구체적인 형태를 얻은 것이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 지 한 세기가 지났지만, 유관순이라는 이름은 여전히 우리 의식 속에서 하나의 상태로 존재한다. 그것은 청년의 순수함과 지도자의 결단력, 그리고 자유를 향한 불굴의 신념이 한 인물 안에 중첩된 모습이다. 관측자 효과가 입자의 미래를 결정하듯, 누군가의 행동이 관측되는 순간 역사도 달라진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여전히 그녀를 관측하고 있다. 그 시선이 이어지는 한, 유관순이 남긴 파동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여전히 우리 안에서 새로운 가능성으로 진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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