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작성일 : 2025-08-22 | 수정일 : 2025-08-22 | 조회수 : 18 |
역사 속 도자기는 불과 흙이 만나 빚어낸 또 하나의 우주다. 송대(960~1279) 여주의 정요(鈞臺窯)에서 구워낸 이 붉은빛 화분托(높이 10cm, 너비 15cm)는 작은 기물 안에 불꽃의 격정과 장인의 기예를 동시에 담아낸 걸작이다. 중국 내에서도 보기 드문 희귀품이며, 그 가치는 청말 이후 서양으로 전해져 오늘날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같은 세계적 기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불길이 남긴 붉은 빛의 기적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옥빛이나 청자의 은은함과는 다른, 강렬한 붉은색 유약이다. 정요 특유의 구리계(銅系) 유약은 소성 과정에서 불꽃의 온도와 산화·환원 상태에 따라 예측할 수 없는 색조를 만들어낸다. 검붉은 바탕 위에 번져 내려간 보랏빛과 흑갈색의 농담은, 마치 불길이 스쳐간 흔적처럼 기물의 표면에 생생히 남아 있다. 이는 우연과 필연이 교차한 도공의 실험 정신이 빚어낸 기적이라 할 수 있다.
조형적 특징과 장식미
양쪽에 달린 손잡이와 돌출된 원형 장식은 단순한 장식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안정적인 종모양 기형 위에 배치된 이 장식은 힘과 균형감을 주며, 동시에 사용자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잡아끈다. 단순히 꽃을 받치는 화분托(받침대)임에도 불구하고, 그 존재 자체가 하나의 독립된 예술작품으로 자리매김한다.
존귀함과 세계적 위상
송대 정요의 붉은빛 도자기는 중국 내에서도 희귀하며, 특히 완형으로 남아 있는 것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화분이 함께 남아 있었다면 중국 국가급 보물로 지정되었을 수준의 작품이다. 그러나 받침대만으로도 이미 그 예술적, 역사적 가치는 대단하다. 이런 기물은 단순한 생활 도구가 아니라 권위와 위엄, 그리고 고급스러운 생활문화를 상징했다.
오늘날의 울림
이 화분托를 마주할 때 우리는 단순히 오래된 기물을 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불과 흙, 그리고 장인의 손길이 남긴 실험과 모험의 기록이다. 검붉은 빛이 전하는 울림은 곧 “예술은 불확실성과 위험 속에서도 새로운 아름다움을 창조한다”는 메시지다.
작지만 강렬한 이 기물은 700년 세월을 건너, 오늘 우리에게도 여전히 뜨거운 불꽃의 숨결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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