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작성일 : 2025-08-22 | 수정일 : 2025-08-22 | 조회수 : 18 |
도자기를 바라볼 때, 우리는 종종 흙과 불로 빚어진 단단한 기물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 청 건륭(1736~1748) 연간에 제작된 천청유(天靑釉) 호리병(葫蘆瓶, 높이 23cm)을 마주하는 순간, 기물은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빛과 염원의 형상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마치 하늘빛이 응결되어 병의 곡선 안에 고요히 내려앉은 듯한 풍경이다.
하늘을 닮은 빛, 유약의 정수
표면을 감싼 천청유는 송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가장 순수한 단색유의 전통을 건륭 황실이 극대화한 결과물이다. 옅은 푸른빛은 보는 각도에 따라 달라지며, 햇빛 아래에서는 은은한 비취색으로 빛나고, 실내의 그늘에서는 맑은 하늘색으로 가라앉는다. 이 변화무쌍한 빛깔은 유약이 불과 만나 이룬 기적이자, 당대 장인들이 추구한 완벽에 가까운 기술의 산물이었다. 매끄럽게 흐르는 표면 위에 비친 빛은 물결처럼 잔잔하고, 그 자체로 차분한 명상적 공간을 만든다.
호리병의 형상, 길상의 조형미
이 병의 형태는 두 개의 구체가 위아래로 이어진 호리(葫蘆) 모양이다. 중국 문화에서 호리는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복과 장수를 부르는 길상물이었다. 씨앗이 많아 다산을 의미하고, 속이 비어 있어 무궁한 생명력을 상징했으며, 또 병 모양이 ‘福(복)’과 ‘壽(수)’의 발음을 연상케 해 오래도록 귀히 여겨졌다. 황실에서 호리병은 단순히 장식품이 아니라, 의례의 상징물이자 번영과 장수를 기원하는 눈에 보이는 염원의 그릇이었다.
건륭 황실과 관요의 품격
이 작품은 관요(官窯)에서 제작된 기물이다. 건륭제는 예술 애호가이자 까다로운 안목을 지닌 군주로, 도자기에 있어서는 송·원·명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한층 세련된 미감을 추구했다. 관요의 장인들은 황제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엄격한 규율과 기술적 완벽성을 갖추어야 했다. 이 호리병의 고른 형태와 흠잡을 데 없는 유약의 질감은, 그 시대 장인들의 극한의 정성과 정밀한 솜씨가 빚어낸 결과물이었다.
시간을 건너온 울림
오늘날 우리가 이 호리병을 마주할 때, 그것은 단지 18세기 황실의 사치품이 아니다. 오히려 흙과 불, 그리고 장인의 정신이 응축된 문화적 기록이자, 세속을 넘어선 순수한 아름다움의 상징이다. 단색유의 절제된 품격은 오히려 기물의 곡선을 더욱 강조하며, 화려한 장식보다도 오래도록 지속되는 깊은 울림을 전한다.
이 작은 호리병은 말없이 속삭인다. “풍요와 길상은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함이 아니라, 맑고 단순한 조화에서 비롯된다.” 23cm라는 단아한 크기 속에 담긴 하늘빛은 300년의 세월을 넘어, 지금도 우리의 눈과 마음을 맑히며 오래도록 머문다.
중국 골동품 소장가 조광규의 귀한 작품들을 시대의 맥락과 이야기로 풀어내는 연재를 시작합니다. 판매 수익금의 10%는 문화경제신문사 재단이 받아 전액 문화예술인을 위한 사회공헌에 기부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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