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증시와 상품 시장의 시선이 일제히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입으로 향하고 있는 가운데, 국제 금 가격은 뚜렷한 방향성 없이 소폭 상승하며 거래를 마쳤다. 시장 참여자들은 이틀간의 일정으로 시작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정례회의 결과를 대기하며 대규모 포지션 구축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특히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여전한 상황에서 유가 움직임과 인플레이션 전망이 금 시장의 핵심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뉴욕 금 선물 0.15% 상승... 5,000달러선 안착
17일(미국 동부시간) 오후 12시 30분 기준, 시카고파생상품거래소그룹(CME) 산하 금속선물거래소 코멕스(COMEX)에서 가장 활발하게 거래되고 있는 4월 인도분 금 선물(GCJ6) 가격은 전 거래일 대비 7.70달러(0.15%) 상승한 트로이온스(1ozt=31.10g)당 5,009.90달러를 기록했다. 이날 금 가격은 전장 결제가인 5,002.20달러 부근에서 출발해 좁은 등락 폭을 보이며 강보합권에 머물렀다.
심리적 저항선으로 여겨졌던 5,000달러 선을 상회하며 마감한 점은 긍정적이나, 거래량과 변동성은 평소보다 낮게 나타났다. 이는 익일 발표될 FOMC의 금리 결정과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기자회견을 앞두고 시장의 경계감이 극도에 달했음을 시사한다. 투자자들은 연준이 금리를 동결할 가능성을 높게 보면서도, 향후 금리 경로에 대한 단서를 찾기 위해 경제 전망 요약(SEP)과 점도표 변화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중동 지정학적 리스크 심화... 안전자산 수요 뒷받침
금 가격의 하방을 지지한 주요 요인은 중동 지역의 긴박한 정세 변화였다. 이날 이스라엘은 이란의 안보 핵심 인사인 알리 라리자니 최고 국가안보회의 사무총장을 제거했다고 공식 발표하며 긴장 수위를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이란의 고위급 인사가 피격됨에 따라 양국 간의 전면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금융 시장 내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강화되었다. 지정학적 불확실성은 통상 무이자인 금의 보유 가치를 높이는 핵심 동인으로 작용한다.
다만, 우려했던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 가능성이 다소 낮아지면서 금 가격의 추가 폭등은 제한되었다. 중동의 전략적 요충지인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유조선 통항 차질 우려가 완화되자 위험 회피 심리가 일부 상쇄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러한 지정학적 요인은 금 시장에서 인플레이션 헷지 수요와 안전자산 수요라는 두 가지 상반된 흐름을 동시에 유발하고 있다.
국제유가 횡보와 백악관의 시각
국제유가는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 완화 소식에 상승 폭을 반납하며 배럴당 94~95달러 선에서 횡보세를 나타냈다. 케빈 해싯 미국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이날 CNBC와의 인터뷰를 통해 현재 상황을 비교적 낙관적으로 진단했다. 해싯 위원장은 "유조선들이 해협을 조금씩 통과하기 시작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며 "이는 이란의 실질적인 통제 역량이 생각보다 제한적임을 보여주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백악관 측의 이러한 발언은 에너지 공급망 붕괴에 대한 시장의 공포를 달래는 역할을 했다. 유가의 안정은 곧 인플레이션 압력의 완화를 의미하며, 이는 금 시장에서 물가 상승에 대비한 헷지 수요를 줄이는 요인이 된다. 시장 전문가들은 유가가 현 수준에서 안정을 찾을 경우, 금 가격 역시 폭발적인 상승보다는 점진적인 조정 과정을 거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FOMC 정례회의 돌입... 연준의 인플레이션 진단 주목
금 시장의 향방을 결정지을 최대 분수령은 단연 FOMC다. 시장의 지배적인 전망은 이번 회의에서 정책금리를 현 수준에서 '동결'하는 것이다. 하지만 관건은 금리 결정 그 자체가 아니라, 최근의 유가 급등과 지정학적 불안이 인플레이션에 미칠 영향에 대해 제롬 파월 의장과 위원들이 어떤 진단을 내놓느냐에 있다.
연준이 인플레이션 재발 우려를 강조하며 매파적(통화 긴축 선호) 기조를 유지할 경우, 달러화 강세와 국채 수익률 상승으로 이어져 금 가격에는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반면,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른 경제 성장 둔화 가능성을 언급하며 완화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금 가격은 다시 한번 사상 최고치 경신을 시도할 동력을 얻게 된다. 비즈니스 리더들은 이번 FOMC가 하반기 자산 배분 전략의 가늠자가 될 것으로 보고 기민하게 대응하고 있다.
전문가 분석: "상승 동력 고갈, 균형점 찾는 과정"
시장 전문가들은 현재 금 시장이 매우 섬세한 균형 상태에 있다고 분석한다. 킷코 메털스(Kitco Metals)의 수석 애널리스트 짐 와이코프는 "현재 금 가격은 고조된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유발한 안전자산 수요와, 상승하는 인플레이션으로부터 오는 약세 압력 사이에서 팽팽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평가했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금값이 오를 것 같지만, 연준이 이를 잡기 위해 고금리를 유지하게 되면 금 보유의 기회비용이 커져 오히려 가격에 부정적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와이코프 애널리스트는 향후 전망에 대해 다소 보수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그는 "금 가격이 기술적으로 새로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할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지만, 그것이 가까운 시일 내에 일어날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개인적으로는 현재 금 시장의 상승세가 어느 정도 힘을 다했다고 생각한다(exhausted)"고 덧붙였다. 이는 투자자들이 고점에서 추격 매수하기보다는 차익 실현 매물을 쏟아낼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종합적으로 뉴욕 금 시장은 대외 변수들의 충돌 속에서 '폭풍 전야'와 같은 고요함을 유지하고 있다. 5,000달러라는 역사적인 고지 위에서 맞이하는 이번 FOMC 결과는 금이 단순한 안전자산을 넘어 새로운 가격대를 형성할지, 아니면 일시적 과열을 뒤로하고 조정 국면에 진입할지를 결정하는 결정적 지표가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