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AE는 수출길 봉쇄에 따른 저장고 포화로 원유 생산을 대폭 감축해야 하는 ‘공급망 마비’ 위기에 직면하며 시장의 우려를 키우고 있다.
- 백악관의 진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은 공급 부족을 메울 대안이 부재한 상황에서 장기적인 불안정 국면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국제유가가 이란발 지정학적 리스크의 재점화로 인해 하루 만에 강력한 반등세를 나타냈다. 중동의 핵심 요충지이자 호르무즈 해협을 우회하는 유일한 혈로로 평가받는 아랍에미리트(UAE) 푸자이라 항구가 공격을 받으면서, 글로벌 원유 공급망 차질에 대한 공포가 시장을 덮친 결과다. 한동안 소강상태를 보이던 유가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다시금 배럴당 100달러선을 위협하는 수준까지 치솟으며 비즈니스 현장의 불확실성을 증폭시키고 있다.
호르무즈 우회로 ‘푸자이라’ 피격…WTI 2.9% 급등
17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거래된 4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전 거래일 대비 2.71달러(2.90%) 급등한 배럴당 96.21달러에 장을 마감했다. 전날의 하락분을 단숨에 만회한 것은 물론, 심리적 저항선을 향해 빠르게 치고 올라가는 형국이다.
이번 유가 급등의 직접적인 도화선은 이란의 군사적 행동이다. 이란은 지난 주말에 이어 아랍에미리트의 석유 허브인 푸자이라 항구를 재차 공격하며 글로벌 에너지 시장을 흔들었다. 푸자이라 항구는 지리적으로 호르무즈 해협 근처인 오만만에 위치해 있어, 해협 봉쇄 시 중동 산유국들이 원유를 실어 나를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다. 하루 약 100만 배럴의 원유 수출 능력을 보유한 이곳이 마비될 경우, 전 세계 원유 수급 체계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UAE의 악순환: 수출길 봉쇄와 생산 감축 위기
외신과 시장 전문가들이 가장 우려하는 대목은 푸자이라 항구의 기능 상실이 불러올 도미노 효과다. 현재 사실상 봉쇄 상태에 놓인 호르무즈 해협을 대신해 푸자이라를 통해 원유를 내보내려던 계획이 차질을 빚으면서, 석유수출국기구(OPEC) 내 3위 산유국인 UAE의 원유 생산 체계가 붕괴될 위기에 처했다.
로이터통신은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수출길이 막히면서 석유 저장고가 이미 포화 상태에 도달했다"며 "UAE는 결국 생산량을 평소의 절반 이하로 줄여야만 하는 최악의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전했다. 즉, '수출 통로 봉쇄 → 저장 용량 초과 → 원유 생산 강제 감축'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는 단순한 가격 상승을 넘어 실질적인 공급 부족(Shortage) 사태로 번질 수 있다는 점에서 시장의 공포를 극대화하고 있다.
백악관의 낙관론 vs 시장의 냉정한 지표
유가 상승세가 가팔라지자 미국 정부는 시장 달래기에 나섰다. 케빈 해싯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CNBC와의 인터뷰에서 "유조선들이 해협을 조금씩 통과하기 시작했다는 보고가 있다"며 "이는 이란의 봉쇄 역량이 생각보다 제한적이라는 증거"라고 강조했다. 이 발언 직후 유가는 장중 93.91달러까지 떨어지며 상승 폭을 일부 반납하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또한 이란과의 군사적 대립과 관련해 "우리는 아직 떠날 준비가 되지 않았지만, 가까운 시일 내에 떠날 것"이라는 다소 모호한 메시지를 던지며 긴장 완화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러나 이러한 낙관론은 뉴욕장에서 오래가지 못했다. 지정학적 리스크의 실질적 위협이 해소되지 않았다는 판단 아래 매수세가 다시 유입되었고, 결국 유가는 96달러대에서 견고한 지지선을 형성하며 거래를 마쳤다.
"대안 없는 공급 부족"…장기화되는 불확실성 국면
에너지 전문가들은 현재의 유가 급등이 단기적인 현상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입을 모은다. TD증권의 원자재 전략가 댄 갈리는 호르무즈 해협과 푸자이라 항구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 정도 규모의 거대한 공급 구멍을 메울 수 있는 마개는 현재 어디에도 없다"고 지적했다. 이는 셰일가스 증산이나 타 산유국의 추가 생산만으로는 중동발 공급 차질을 완벽히 보완하기 어렵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IG의 시장 애널리스트 토니 시카모어 역시 보고서를 통해 리스크의 상시화를 경고했다. 그는 "상황이 진정되는 듯 보여도 이란 측 민병대가 유조선에 미사일 한 발을 발사하거나 기뢰를 설치하는 것만으로도 전체 국면은 언제든 다시 격화될 수 있다"며 "투자자들은 현재의 불확실성을 상수로 두고 대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결국 중동의 지정학적 긴장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 한, 유가는 고변동성 장세를 지속하며 글로벌 실물 경제에 지속적인 하방 압력을 가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