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지만 중동 사태 장기화에 따른 국제유가 폭등의 2차 파급효과가 가공식품과 외식 물가 등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아 4월 이후 물가 경로에 비상등이 켜졌다.
- 추가경정예산(추경) 집행을 통한 현금성 지원이 단기적인 총수요 압력을 자극할 것이라는 우려와 GDP 갭 하락에 따른 제한적 영향이라는 재경부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글로벌 지정학적 리스크가 실물 경제를 위협하는 가운데, 한국의 3월 물가지표가 발표됐다. 중동 지역의 긴장 고조로 유가가 치솟는 악조건 속에서도 정부의 강도 높은 최고가격제 도입이 방어막 역할을 하며 물가 상승률을 2%대 초반에 묶어두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전문가들과 시장 관계자들은 이러한 '지표상의 안도'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유가 급등의 여파가 시차를 두고 서비스업 전반으로 전이되는 이른바 '2차 파급효과'가 4월부터 본격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고유가 대응을 위한 추경 편성이라는 정책적 변수까지 더해지며, 하반기 물가 관리의 향방은 더욱 불투명해지는 양상이다.
3월 물가 2.2% 방어의 일등공신 '최고가격제'와 '농산물'
2일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3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 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2.2% 상승했다. 이는 지난해 말부터 이어져 온 둔화 흐름 속에서 3개월 만에 다시 반등한 수치지만, 국제유가의 폭발적인 상승세를 고려하면 당초 시장의 우려보다는 낮은 수준이라는 평가다. 이번 물가 지표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석유류와 농산물의 상반된 움직임이 만들어낸 기묘한 균형이다.
세부 내역을 살펴보면 석유류 가격은 전년 동월 대비 9.9% 급등하며 전체 물가 상승률을 0.39%포인트(p) 끌어올리는 주범 역할을 했다. 특히 경유는 17.0%, 휘발유는 8.0% 상승하며 가파른 오름세를 보였다. 이는 두바이유 기준 국제유가가 지난해 3월 배럴당 72.5달러에서 올해 128.5달러로 77% 이상 폭등한 영향이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다. 재경부 관계자는 "3월 물가에 가장 큰 상방 압력을 가한 것은 명백히 석유류였다"고 전제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2.2%라는 수치를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은 정부가 도입한 최고가격제의 효과가 분명히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의 직접적인 가격 통제가 유가 급등의 충격을 일정 부분 흡수했다는 분석이다.
석유류의 폭등을 상쇄한 것은 농산물 가격의 하락세였다. 기상 여건의 전반적인 개선과 지난해 높았던 가격에 따른 기저효과가 맞물리며 농산물 가격은 전년 동월 대비 5.6% 하락했다. 이는 전체 물가 상승률을 0.25%p 낮추는 효과를 냈으며, 채소와 과실류를 중심으로 소비자들의 장바구니 부담을 덜어줬다. 신선식품지수 역시 6.6% 하락하며 물가 안정의 버팀목이 됐다. 결국 3월 물가는 유가라는 거대한 파고를 농산물 가격 하락과 정책적 가격 억제책이 가까스로 막아낸 형국이다.
4월 이후 덮쳐올 '유가 2차 파급효과'의 공포
문제는 지금부터다. 3월의 지표가 과거의 데이터라면, 4월 이후의 전망은 불확실성의 연속이다. 중동 전쟁의 전개 방향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유가 상승의 후폭풍이 이제 막 시작됐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가능성과 주요 에너지 시설 피격 등으로 원유는 물론 LNG, 나프타 등 에너지 원자재 전반의 공급 차질이 현실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원가 상승은 단순히 주유소 기름값 상승에 그치지 않는다. 원자재 가격 상승이 가공식품 제조 원가와 외식 물가, 그리고 항공료를 포함한 운송 서비스 가격으로 전이되는 2차 파급효과가 본격화될 시점이 바로 4월이다. 유상대 한국은행 부총재는 이날 열린 회의에서 "4월 이후 소비자물가는 국제유가의 큰 폭 상승의 영향으로 인해 오름폭이 확대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며 엄중한 상황임을 시사했다. 재경부 내부에서도 4월 유가 추이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신중한 입장을 보이면서도, 물가 상방 압력이 더욱 짙어질 것이라는 점에는 이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추경發 수요 압력, 물가 불안의 새로운 변수
여기에 정부가 추진 중인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이 물가 불안을 부채질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번 추경은 주로 고유가로 고통받는 저소득층 지원을 위한 현금성 이전지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취지는 정당하나, 경제학적으로 볼 때 단기적인 소비를 자극해 총수요 압력을 키울 위험이 크다는 분석이다.
정형기 DS증권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소비쿠폰이나 지역화폐 등 사용처와 기한이 정해진 지원금은 특정 업종에 대한 수요를 단기적으로 집중시키는 경향이 있다"며 "이는 식료품, 외식, 의류 등 소비 바스켓 내 주요 품목의 물가로 즉각 전이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공급 측면에서의 유가 충격과 정부의 추경을 통한 수요 측면의 자극이 동시에 맞물릴 경우, 국내 물가 상방 압력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될 수 있다는 논리다.
반면 재경부는 이러한 우려에 대해 신중한 선을 긋고 있다. 재경부 관계자는 "현재 우리나라의 GDP 갭(실제 GDP와 잠재 GDP의 차이)이 마이너스인 상황임을 고려해야 한다"며 "경제 전반의 유휴 생산 능력이 존재하기 때문에 추경이 물가를 자극하는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3050 비즈니스맨들 사이에서는 고유가와 정책 변수가 맞물린 현재의 상황이 하반기 경영 환경에 심각한 하방 리스크로 작용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4월 이후 펼쳐질 물가 전쟁에서 정부의 정책 수단이 얼마나 실효성을 거둘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