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란이 강경파 인사를 국가안보회의 사무총장으로 임명하고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를 징수하는 등 중동 내 지정학적 긴장이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 쉘(Shell) 등 글로벌 에너지 기업들은 항공유를 시작으로 디젤, 휘발유 등 제품 공급난이 아시아를 넘어 유럽까지 확산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이 최정예 공수부대를 중동 지역으로 급파하기로 결정하면서 국제유가가 다시 한번 요동치고 있다. 이란의 강경파 득세와 카타르의 LNG 공급 중단 선언이 맞물리며 에너지 시장은 공급망 붕괴라는 실질적인 위협에 직면했다. 특히 미 육군 정예 부대의 파병은 단순한 무력 시위를 넘어 지상군 투입 가능성까지 시사하고 있어, 전 세계 금융 및 에너지 시장의 긴장감이 극도로 높아지는 양상이다.
미 정예 82공수사단 중동 급파…지상전 가능성에 시장 '경악'
24일(미국 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5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전 거래일보다 4.22달러(4.79%) 폭등한 배럴당 92.35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장 중 한때는 최고치인 93.36달러까지 치솟으며 심리적 저항선을 위협했다. 이날 유가 상승의 결정적 도화선은 미국 국방부의 전격적인 파병 결정 소식이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미 국방부는 이란에 대한 작전 지원을 위해 육군 최정예 부대인 제82공수사단 소속 병력 약 3,000명을 중동에 배치할 계획이다. 해당 부대는 신속하게 목표물을 점령하고 교두보를 확보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만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에 대한 지상군 투입 카드를 본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군사 전문가들은 공수부대의 배치가 단순한 방어 목적을 넘어선 공세적 성격이 짙다고 분석하고 있으며, 이는 유가 시장에 강력한 상방 압력으로 작용했다.
이란 강경파 전면 배치…호르무즈 해협 '통행료' 압박
미국의 무력 대응 시사에 이란 역시 강대강 국면으로 맞서고 있다. 이란 정부는 이날 안보 수장 격인 최고국가안보회의 사무총장에 모하마드 바게르 졸가드르를 임명했다. 졸가드르 신임 총장은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출신의 대표적인 강경파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등용은 향후 이란의 대미 전략이 더욱 거칠어질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실질적인 경제 보복도 시작됐다. 블룸버그 통신은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일부 선박에 대해 최대 200만 달러에 달하는 고액의 통행료를 징수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전 세계 원유 물동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길목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행위는 글로벌 물류 비용 상승과 더불어 원유 공급 차질에 대한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시장에서는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실질적으로 무기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카타르 LNG 불가항력 선언…에너지 안보 비상
중동의 긴장은 원유를 넘어 천연가스(LNG) 시장으로까지 번졌다. 카타르에너지는 한국과 중국 등 주요 수입 국가들을 대상으로 장기 LNG 공급 계약에 대해 '불가항력(Force Majeure)'을 선언했다. 이는 카타르 에너지의 핵심 생산 기지인 라스라판 지역이 최근 이란의 공격을 받은 것에 따른 불가피한 조치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과 중국 경제에는 직격탄이 될 전망이다. 발전용 및 산업용 연료인 LNG 공급에 차질이 생길 경우, 제조원가 상승과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압력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특히 카타르가 에너지 안보의 핵심 파트너였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번 사태는 동북아시아 전체의 에너지 수급 전략에 심각한 차질을 초래하고 있다.
쉘 CEO "연료 공급난, 아시아 넘어 유럽 확산될 것"
글로벌 석유 메이저 기업인 쉘(Shell)의 와엘 사완 최고경영자(CEO)는 에너지 시장의 미래에 대해 매우 비관적인 전망을 내놨다. 그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세라위크 에너지 콘퍼런스에서 "남아시아에서 시작된 연료 공급 부족 현상이 머지않아 동북아시아로 확산할 것"이라며 "4월부터는 유럽에서도 본격적인 공급난이 가시화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사완 CEO는 공급 부족이 단계별로 시장을 타격할 것으로 보았다. 이미 항공유 시장은 타격을 입기 시작했으며, 뒤를 이어 물류의 핵심인 디젤, 그리고 북반구의 드라이빙 시즌(Driving Season)과 맞물린 휘발유 순으로 공급 위기가 전이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는 현재 상황이 원유 자체의 공급보다 정제된 석유 제품의 공급난이 더 큰 위협이 되고 있다고 지적하며, 시장 참여자들의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시장 전망: "90달러 시대 고착화 우려"
전문가들은 당분간 유가의 하향 안정화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미국의 파병 병력이 중동에 도착하고 이란의 대응 수위가 높아질수록 유가는 변동성을 키우며 배럴당 100달러 선을 위협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정유 제품의 공급난이 쉘 CEO의 예견대로 확산할 경우, 실물 경제 전반에 걸친 '스태그플레이션' 공포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미 공수부대의 움직임은 단순한 지정학적 이슈를 넘어선 '전시 상황'에 준하는 신호로 시장은 받아들이고 있다"며 "국내 기업들 역시 유가 및 환율 변동성에 대비한 비상 경영 체제 구축이 시급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