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외환시장에서 미국 달러화가 다시금 강력한 우상향 곡선을 그리며 시장의 주도권을 잡았다. 전날의 일시적인 조정 국면을 딛고 일어선 달러화의 배경에는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위기 고조와 이에 따른 원유 가격 폭등, 그리고 인플레이션 재발에 대한 공포가 자리 잡고 있다. 특히 미국이 중동 전역에 지상군을 투입할 수 있다는 구체적인 보도가 잇따르며 안전자산으로서의 달러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는 미 국채 금리 상승과 맞물리며 주요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끌어올리는 결정적인 동인이 되었다.
중동 내 미 지상군 투입 가능성 가시화… '전쟁 불확실성'에 달러 수요 폭증
현지 시각 20일 뉴욕 외환시장에서 달러인덱스는 전장보다 0.375% 상승한 99.582를 기록하며 다시금 100선 돌파를 목전에 뒀다. 장중 한때는 99.795까지 치솟으며 시장의 긴장감을 반영했다. 이날 시장을 뒤흔든 가장 큰 변수는 미 국방부의 병력 이동 소식이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미 국방부는 캘리포니아 기지 소속 해병대원 약 2,200~2,500명을 중동을 담당하는 미국 중부사령부(CENTCOM)로 이동시키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미 일본 오키나와에 주둔 중이던 해병대 2,200명이 급파된 데 이어 추가적인 병력 증강이 이뤄지면서 시장은 미국이 이란에 대한 지상군 투입 가능성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여기에 미 매체 악시오스의 보도는 불에 기름을 부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원유 수출의 약 90%를 담당하는 핵심 요충지인 하르그 섬을 점령하거나 봉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한 군사적 압박을 넘어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는 사안으로, 시장 참여자들은 즉각적인 위험 회피 모드에 돌입했다. 장 후반 CBS가 고위 군 지휘관들이 지상군 파병을 위한 구체적인 요청 사항을 제출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달러화의 강세 압력은 더욱 공고해졌다. 트럼프 대통령 또한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나는 이란과 휴전하고 싶지 않다"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며 지정학적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영국 재정 악화 속 '트리플 투매' 발생… 파운드화 0.7%대 급락
달러화의 강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영국 파운드화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이날 파운드-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대비 0.721% 급락한 1.33338달러를 기록했다. 영국 경제의 뇌관은 재정 적자였다. 영국 통계청(ONS) 발표에 따르면 지난 2월 영국의 공공부문 순차입 규모는 143억 파운드로 집계되어, 시장 예상치였던 85억 파운드 적자를 두 배 가까이 상회했다. 이는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인한 정부 지출 증가와 세수 감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영국의 주식과 채권, 통화가 일제히 매도세에 휩싸이며 소위 '투매' 현상이 나타났다. 판테온 매크로이코노믹스의 엘리엇 조던 도크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에너지 가격이 조속히 안정되지 않는 한 영국 재무장관은 가을 예산안 수립 과정에서 극도로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재정 건전성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되면서 파운드화에 대한 투자 심리는 급격히 냉각되었고, 이는 상대적인 달러 강세를 더욱 부추기는 효과를 낳았다.
에너지 의존국 통화의 몰락… 엔화 1.05% 급등하며 160엔 육박
에너지 가격 급등의 직격탄은 일본 엔화와 유로화로도 향했다. 특히 엔화의 약세가 두드러졌다. 달러-엔 환율은 전일 마감가인 157.642엔에서 1.054%나 폭등한 159.304엔을 기록하며 160엔 선에 바짝 다가섰다. 일본은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극히 높은 국가로, 국제 유가 상승은 무역 수지 악화와 직결된다는 점이 엔화 매도를 촉발했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 4월 인도분이 배럴당 100달러에 근접하자 시장은 일본 경제의 비용 상승 압박에 주목했다.
유로-달러 환율 또한 0.228% 하락한 1.15583달러를 나타냈으며, 역외 달러-위안(CNH) 환율도 0.378% 상승하며 달러 강세 흐름에 동참했다. 호주 커먼웰스은행(CBA)의 외환 전략가 캐롤 콩은 "분쟁이 장기화될수록 안전자산으로서의 달러 가치는 상승할 수밖에 없다"며 "특히 미국은 에너지 수출국으로서 고유가 상황에서 경제적 혜택을 볼 수 있다는 점이 다른 에너지 수입국 통화와의 차별화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분석했다.
연준 "인플레이션 우려가 성장 압도"… 고금리 장기화 가능성 시사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주요 인사들의 매파적 발언도 달러 강세를 뒷받침했다. 크리스토퍼 월러 연준 이사는 이날 전쟁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전이가 더 큰 우려 사항이 되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유가 충격이 일시적이지 않고 지속될 경우 인플레이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시장의 조기 금리 인하 기대에 선을 그었다. 나티시스의 미국 금리 전략 책임자 존 브릭스 역시 "시장은 현재 경제 성장 둔화보다 인플레이션 가속화를 더 두려워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결국 중동의 전운이 감도는 가운데 에너지 가격 급등이 인플레이션의 두 번째 파동을 불러올 것이라는 공포가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미 국채 금리가 이러한 우려를 반영해 급등세를 보이면서, 달러화는 단순한 안전자산을 넘어 고금리 수익까지 보장하는 매력적인 투자처로 인식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중동 상황이 진정 국면에 들어서기 전까지는 달러의 독주 체제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으며, 특히 지상군 투입 여부가 향후 외환시장의 향방을 결정지을 핵심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