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경제 석학이자 금융 전문가인 모하메드 엘-에리언 알리안츠그룹 경제 고문이 중동발 리스크에 따른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을 강하게 경고하고 나섰다. 중동 지역의 군사적 충돌이 국제 유가의 가파른 상승을 견인하면서, 안정세를 찾아가던 인플레이션이 다시금 불붙을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진단이다. 엘-에리언 고문은 이러한 유가 급등이 단순한 에너지 가격 상승을 넘어 미국 경제를 침체의 늪으로 밀어 넣는 결정적인 트리거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하며 시장의 경계심을 촉구했다.
경기 침체 확률 35%로 상향 조정, 유가 급등이 촉매제
엘-에리언 고문은 17일(현지시간) 경제 전문 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와의 인터뷰를 통해 미국 경제의 연착륙 전망에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그는 중동 지역의 긴장 고조로 인한 유가 급등이 잠재적인 인플레이션 악순환을 부추기고 있다고 진단하며, 이에 따라 미국이 경기 침체에 빠질 확률을 종전 25%에서 35%로 상향 조정했다고 밝혔다. 이는 최근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정책과 고용 지표 안정세에 안도하던 시장에 던지는 묵직한 경고장이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유가 상승은 단순한 비용 문제를 넘어 수요 충격으로 이어지는 구조적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 에너지 가격이 상승하면 가계의 가처분 소득이 줄어들어 전반적인 소비 심리가 위축되고, 이는 기업의 매출 감소와 생산성 저하로 연결된다는 논리다. 엘-에리언은 특히 이번 유가 상승이 공급망 차질과 맞물려 인플레이션을 고착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가장 큰 위험 요소로 꼽았다.
미국 경제를 위협하는 2단계 위기 시나리오
엘-에리언 고문은 현재 미국 경제가 직면한 위기를 두 단계로 나누어 설명했다. 1단계 위기는 '고인플레이션의 고착화'다. 유가 급등으로 인해 치솟은 물가는 일반 대중의 실질 구매력을 급격히 잠식한다. 동시에 기업들은 생산 및 물류 비용 증가라는 이중고를 겪게 된다. 이는 마진 축소로 이어져 기업 경영의 건전성을 위협하게 된다.
이어지는 2단계 위기는 본격적인 '경제 지표의 악화'다. 1단계에서 발생한 비용 압박과 소비 위축이 장기화되면 결국 경제 성장률은 둔화될 수밖에 없다. 성장이 멈추면 기업들은 구조조정에 나서게 되고, 이는 실업률 상승으로 이어진다. 엘-에리언은 인플레이션이 통제 범위를 벗어날 경우, 성장이 가로막히는 동시에 고물가가 유지되는 전형적인 경기 침체 경로를 걷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금융 시장의 아킬레스건: 신용 위축과 자산 가치 거품
이번 경고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엘-에리언이 실물 경제뿐만 아니라 금융 시장의 구조적 취약성을 함께 지적했다는 점이다. 그는 인플레이션 심화가 최근 금융 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여러 위험 징후들과 상호작용하며 위기를 증폭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대표적인 징후로 민간 신용 시장(Private Credit Market)에서의 대규모 상환 요청과 전 세계적인 국채 수요 부진을 언급했다.
엘-에리언은 "현재 주식 시장은 다소 과대평가된 측면이 있다"며 자산 가격의 거품 가능성을 경고했다. 만약 대규모 금융 위기가 발생하여 금융 여건이 급격히 악화될 경우, 시중 자금이 얼어붙으면서 가계와 기업이 신용을 얻기 어려워지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신용 경색은 결국 경제 전반에 강력한 수요 충격을 발생시키며 경기 침체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들 수 있다.
스태그플레이션 공포와 장기화되는 전쟁 리스크
가장 우려스러운 시나리오는 경제 성장률은 둔화되는 반면 물가 상승은 멈추지 않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의 도래다. 엘-에리언은 중동 지역의 공급 차질이 해소되지 않고 장기화될 경우 유가가 추가적으로 상승할 가능성이 높으며, 이는 스태그플레이션 위험을 극대화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쟁의 불확실성이 제거되지 않는 한 경기 침체 위험은 계속해서 우상향 곡선을 그릴 것이라는 전망이다.
결론적으로 엘-에리언 고문의 분석은 미국 경제가 대내외적인 복합 위기에 직면해 있음을 시사한다. 공급망의 불안정성, 에너지 가격 변동성, 그리고 금융 시장의 유동성 위축이라는 세 가지 파고가 동시에 몰아치고 있다는 것이다. 비즈니스 리더들과 투자자들은 이제 연착륙에 대한 낙관론에서 벗어나, 고물가와 저성장이 공존하는 혹독한 경기 침체 시나리오에 대비해야 할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