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만치료제 시장의 총 규모(TAM)가 기존 1,500억 달러에서 최대 1,200억 달러 수준으로 하향 조정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다.
- 경쟁 심화와 가격 압박, 신제품 수요 부진 우려가 겹치며 일라이릴리 주가는 하루 만에 5.94% 급락했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비만치료제 열풍을 주도하며 '제약업계의 테슬라'로 불리던 일라이릴리(NYS:LLY)에 대해 이례적인 '매도' 경고등이 켜졌다. 그간 장밋빛 일색이었던 비만치료제 시장의 성장 전망에 대해 글로벌 투자은행 HSBC가 제동을 걸고 나서면서,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시장 과열에 대한 우려와 함께 밸류에이션 재평가론이 급부상하고 있다.
HSBC의 전격적인 투자의견 하향, "완벽을 넘어선 고평가"
17일(현지시간) 외신 및 금융업계에 따르면 HSBC는 일라이릴리에 대한 투자의견을 기존 '보유(Hold)'에서 '매도(Reduce)'로 한 단계 하향 조정했다. 단순히 수익 실현을 권고하는 수준을 넘어, 현재의 주가 수준이 기업의 실질적 가치와 미래 성장성을 과도하게 선반영했다는 통렬한 비판을 가한 것이다.
HSBC는 투자의견 하향과 동시에 일라이릴리의 목표 주가도 기존 1,070달러에서 850달러로 대폭 낮춰 잡았다. 이는 직전 거래일 종가 대비 약 20% 가까운 하락 여력이 있다는 의미로, 시장에 상당한 충격을 안겼다. HSBC의 라제시 쿠마르 애널리스트는 보고서를 통해 "현재 일라이릴리의 주가는 모든 긍정적인 변수가 완벽하게 작동할 것을 가정한 '완벽한 수준(Priced for Perfection)'으로 고평가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즉, 조금이라도 기대치에 못 미치는 변수가 발생할 경우 주가는 하락 압력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비만치료제 시장 규모(TAM) 재산정, "1,500억 달러는 환상"
이번 보고서에서 가장 주목받는 대목은 비만치료제 시장의 총 잠재시장 규모(TAM)에 대한 근본적인 의구심이다. 2020년대 초반, 글로벌 제약 시장은 비만치료제 시장이 2030년대 초반까지 약 1,50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일라이릴리와 노보 노디스크 등 선두 주자들이 시장을 독식하며 막대한 수익을 거둘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쿠마르 애널리스트는 이러한 기대치가 지나치게 낙관적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2032년까지 실제 시장 규모가 800억 달러에서 1,200억 달러 사이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기존 전망치 대비 최대 절반 가까이 시장 파이가 줄어들 수 있다는 경고다. 시장 규모의 축소 전망은 곧 일라이릴리가 가져갈 수 있는 이익의 상한선이 낮아짐을 의미하며, 이는 현재의 높은 멀티플(주가배수)을 정당화하기 어렵게 만드는 핵심 요인이다.
심화되는 경쟁과 가격 전쟁의 서막
HSBC는 일라이릴리가 직면한 '역풍'의 실체로 경쟁 심화를 꼽았다. 현재 일라이릴리는 젭바운드와 마운자로를 앞세워 시장을 장악하고 있지만, 후발 주자들의 추격이 거세지면서 가격 주도권이 약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쿠마르 애널리스트는 "비만치료제 시장에서 상당한 수준의 가격 경쟁이 예상된다"며, 이는 곧 영업이익률의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일라이릴리가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삼고 있는 경구용 비만치료제 '오르포글리프론'에 대해서도 냉정한 평가를 내놨다. 2분기 중 출시될 예정인 이 약물은 복용 편의성을 무기로 시장 기대를 모았으나, HSBC는 실제 시장 수요가 기대치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미 주사제 형태의 강력한 치료제들이 시장에 안착한 상황에서, 경구제 시장의 침투 속도가 예상보다 느릴 수 있다는 우려다.
뉴욕증시 직격탄, 시가총액 증발과 향후 전망
이러한 분석이 시장에 전달되자 일라이릴리의 주가는 즉각 반응했다. 이날 뉴욕증시에서 일라이릴리 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5.94% 하락한 930.32달러에 장을 마감했다. 장중 내내 매도세가 이어지며 시가총액이 수십 조 원 단위로 증발했다. 비만치료제라는 강력한 테마로 상승 가도를 달리던 주가가 강력한 저항선에 부딪힌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HSBC의 보고서가 그동안 비만치료제 섹터에 쏠렸던 과도한 낙관론을 경계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30~50대 비즈니스맨 투자자들에게는 단순한 주가 조정을 넘어, 성장주의 밸류에이션 산정에 있어 시장 규모의 실질적인 검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시사한다. 일라이릴리가 향후 실적 발표를 통해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을지, 아니면 비만치료제 거품론의 시작점이 될지 시장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