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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경제신문

[서평] 한병철 『리추얼의 종말』: 정처 없는 피로 사회, 우리는 어떻게 함께 머물 것인가?

진재근 기자 (jinzao77@naver.com)


[서평] 한병철 『리추얼의 종말』: 정처 없는 피로 사회, 우리는 어떻게 함께 머물 것인가?

진재근 기자 (jinzao77@naver.com)




최초 작성일 : 2026-01-12 | 수정일 : 2026-01-12 | 조회수 : 1016


[서평] 한병철 『리추얼의 종말』: 정처 없는 피로 사회, 우리는 어떻게 함께 머물 것인가?
핵심 요약
철학자 한병철은 저서 『리추얼의 종말』을 통해 현대 사회의 '정처 없음'과 '접촉 상실' 현상을 진단합니다. 유행하는 루틴이 아닌, 공동체의 가치를 내면화하고 시간을 의미 있게 구조화했던 '리추얼'의 소멸이 신자유주의적 경쟁, 자기착취, 번아웃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합니다. 데이터주의와 비대면 문화는 이러한 현상을 심화시키며, 책임과 관계가 결여된 폭력 및 에로스, 그리고 '함께 있음'의 상실을 초래한다고 경고합니다. 책은 '어떻게 다시 함께 머물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공동체 회복을 위한 리추얼 재건의 필요성을 역설합니다.

『리추얼의 종말』은 오늘날 한국 사회의 일상, 정치, 전쟁, 성까지 아우르는 철학적 성찰을 담은 짧지만 밀도 높은 에세이입니다. 독일 철학자 한병철은 특유의 간결한 문체로, 현대 사회를 '정처 없음'과 '접촉 상실'의 시대로 규정하며 우리가 무심코 지나쳐 온 사회 현상들을 낯설게 조명합니다. 특히, 공동체적 가치와 질서를 체화하고 시간을 의미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리추얼'의 부재가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심각한 영향력을 분석하며, '어떻게 다시 함께 머물 것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리추얼, 공동체와 시간을 잇는 연결고리

한병철이 말하는 '리추얼'은 단순히 유행하는 자기계발식 '루틴'이나 습관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이는 반복되는 상징적 행위를 통해 공동체의 가치와 질서를 몸에 새기고, 시간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사람들이 거주 가능한 '집'으로 바꾸는 강력한 힘을 지닙니다. 과거의 제사, 예배, 축제, 마을 행사, 혹은 가족들이 함께 밥을 먹고 TV를 보던 시간들이 바로 이러한 리추얼의 예시입니다. 이러한 리추얼은 시간을 체계적으로 구조화하고, 사람들을 서로 연결하며, 궁극적으로는 삶을 '머물 수 있는 집'으로 만드는 중요한 장치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성과와 경쟁으로 채워진 리추얼의 빈자리

이 책이 설득력을 얻는 지점은, 이러한 본질적인 리추얼이 사라진 자리에 신자유주의적 성과주의, 치열한 경쟁, 그리고 자기 착취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는 분석입니다. 개인은 더 이상 공동체의 유기적인 리듬 속에서 살아가기보다는, 각자의 파편화된 시간 속에서 '자기 경영'과 '자기 브랜딩'을 끊임없이 수행하는 프로젝트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번아웃, 우울, 그리고 깊은 공허함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리추얼이 제공했던 안정된 리듬과 의미가 사라지면서, 남은 것은 끊임없는 타인과의 비교, 평가, 그리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피로뿐이라는 진단은 현대 한국 사회의 현실과 정확히 일치하는 지점입니다.

업계 전문가 A씨는 "한병철의 분석은 현대 사회의 소외와 고립감을 명확하게 짚어내고 있으며, 공동체적 가치 회복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고 평가했습니다.

데이터주의와 인간의 수량화: 관계의 해체

한병철은 현대 사회를 지배하는 '피로 사회'의 근본적인 배경으로 데이터주의를 날카롭게 비판합니다. '좋아요' 수, 조회수, 각종 점수와 지표들이 삶의 궁극적인 기준이 되면서, 사람들은 서로를 얼굴과 목소리를 지닌 온전한 존재가 아닌, 단순히 숫자와 프로필로 소비하게 되었습니다. 과거 의례와 만남 속에서 서로를 '환대받는 존재'로 마주했던 경험은 희미해지고, 이제는 데이터의 크기나 그래프의 모양으로 개인의 가치가 판단되는 현실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소셜 미디어와 각종 플랫폼에 깊숙이 잠식된 오늘날 우리의 일상에 특히 강하게 와닿습니다. 지역 공동체 모임을 기획하거나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할 때조차, "얼마나 많은 사람이 참여했는가, 몇 건의 결과물이 나왔는가"가 우선시되는 현실에서, 리추얼이 부여했던 상징적 의미와 서사는 점차 희미해집니다. 무엇이 가치 있는지에 대한 기준이 데이터에 종속되면서, 진정으로 의미 있는 만남보다는 '측정 가능한 성과'가 중심에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 용어 설명: 데이터주의(Dataism)란?
데이터주의는 데이터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이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상입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의 발달과 함께 데이터가 의사결정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으면서 이러한 경향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비접촉 폭력과 에로스의 탈리추얼화

이 책의 또 다른 흥미로운 지점은 리추얼의 소멸을 단순히 개인의 심리나 일상에 국한시키지 않고, 정치, 전쟁, 성의 영역까지 확장하여 분석한다는 점입니다. 특히 드론 전쟁의 사례는 충격적으로 다가옵니다. 몸과 몸, 얼굴과 얼굴이 직접 맞닥뜨리던 전쟁의 현실성이 제거되고, 멀리 떨어진 조종실에서 화면과 좌표를 보며 살해를 수행하는 구조는 '접촉 없는 폭력'의 정점을 보여줍니다. 이 과정에서 책임감, 죄책감, 애도와 같은 인간적인 감정을 위한 리추얼은 차단되며, 전쟁은 단순한 기술적 작업, 클릭과 조작의 행위로 환원됩니다.

포르노에 대한 분석 역시 '에로스의 탈리추얼화'라는 관점에서 깊은 통찰을 제공합니다. 구애, 기다림, 수줍음, 상징과 언어, 그리고 관계의 복잡한 서사가 제거된 자리에는 즉각적인 소비 가능한 자극과 이미지만이 남습니다. 타인은 더 이상 고유한 얼굴과 삶을 지닌 존재가 아니라, 교체 가능하고 스크롤로 쉽게 넘길 수 있는 대상으로 전락합니다. 이때 포르노는 단순한 음란물의 문제를 넘어, '관계로서의 성'이 붕괴되는 현대 문화의 징후로 제시됩니다.

코로나 팬데믹: 비접촉 사회의 가속화

한병철은 코로나 팬데믹을 리추얼의 위기가 가속화된 결정적인 계기로 읽어냅니다. 예배, 회식, 각종 모임, 축제, 장례식 등 함께 몸을 맞대고 시간을 보내던 수많은 의례들이 중단되면서, 사회는 더욱 '접속' 중심으로 재편되었습니다. 화면 앞에서 이루어지는 접속은 유지되었지만, 함께 숨 쉬고 몸을 움직이며 경험하는 진정한 리추얼은 점차 사라져 갔습니다.

이러한 분석은 한국의 교회, 지역 축제, 주민자치 활동 등 공동체 경험을 가진 독자들에게 특히 깊은 울림을 줄 것입니다. 줌(Zoom) 회의나 온라인 예배가 가능해졌다고 해서, 그 이전의 '함께 있음'이 선사했던 고유한 감각과 리듬이 회복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 책은 날카롭게 환기합니다.

⚠️ 향후 전망 및 리스크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가속화된 비대면 문화는 리추얼의 부재를 더욱 심화시킬 가능성이 있습니다. 온라인을 통한 연결이 물리적, 정서적 연결을 완전히 대체하지 못하는 한, 개인의 고립감과 공동체의 와해는 더욱 심화될 수 있습니다. 이는 사회적 자본의 감소와 공동체적 유대감 약화로 이어져, 장기적으로 사회적 불안정을 초래할 위험이 있습니다.

리추얼 회복을 향한 요청과 남겨진 과제

『리추얼의 종말』이 던지는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질문은 바로 "어떻게 다시 함께 머물 것인가"입니다. 저자는 리추얼이 개인의 중심성을 잠시 내려놓고, 타자와 공동체를 향해 자신을 열게 만드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합니다. 놀이, 축제, 의식, 애도와 같은 리추얼을 다시 세우는 것이, 멈추지 않는 경쟁 사회에서 벗어나 진정한 삶의 의미를 되찾는 길이라는 메시지는 간명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다만, 책의 분량과 형식적인 제약상, 이러한 리추얼 회복을 위한 구체적인 실천 방안이나 성공 사례는 거의 제시되지 않습니다. 이는 이론서로서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동시에, 독자에게는 아쉬움으로 남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현장에서 마을 공동체를 만들거나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실무자 입장에서는,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다시 시작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결국 독자 자신의 몫으로 남겨지게 됩니다.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
  • 우리 공동체에는 현재 어떤 리추얼이 남아있습니까?
  • 그 리추얼은 사람들을 진정으로 묶고 삶을 풍요롭게 합니까, 아니면 형식적인 껍데기에 불과합니까?
  • 데이터와 성과의 논리가 우리의 시간과 관계를 어디까지 잠식했습니까?
  • 전쟁, 성, 정치, 교육의 영역에서 우리는 여전히 타자를 '얼굴'로서 마주하고 있습니까?

이러한 질문들을 가슴에 품고 『리추얼의 종말』을 읽는다면, 이 책은 단순한 철학적 논의를 넘어, 우리가 속한 마을, 교회, 가족, 교육 현장을 다시 설계하고 성찰하게 만드는 강력한 촉매제가 될 것입니다. 멈추지 않는 경쟁 속 개인의 시간에서 벗어나, 놀이, 축제, 의식, 애도와 같은 살아있는 리추얼을 다시 세워야 한다는 저자의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드론 전쟁, 데이터주의, 포르노가 상징하는 비접촉, 비관계, 비의례의 세계를 넘어, 함께 반복하고 함께 머무는 리추얼 속에서만이 진정한 사랑과 공동체, 그리고 삶의 진정한 '정처'가 다시 열릴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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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재근 기자

(jinzao77@naver.com)

책사인중모(책을사랑하는인천중구모임) 대표

한국웰다잉교육문화연구원 사무국장

한국민들레작은도서관 운영위원장

신포동 주민자치회 마을환경분과위원회 위원

전) 늘편한요양원 관리책임자

전) 송파노인종합복지관 노인돌봄사업 서비스관리자

전) 요한노인복지센터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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