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작성일 : 2025-08-15 | 수정일 : 2025-08-15 | 조회수 : 24 |
오늘은 제80주년 광복절이다. 매년 이 날이면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얼굴이 떠오르지만, 유독 마음 한켠에 오래 머무는 이름이 있다. 1909년 하얼빈 역에서 세 발의 총성을 울린 청년, 안중근. 그는 이토 히로부미를 쓰러뜨림으로써 침묵하던 세계를 놀라게 했고, 죽음을 기다리던 감옥 안에서 오히려 ‘평화’를 설계했다. 우리가 기억하는 건 총을 든 그의 모습이지만, 그가 남긴 진짜 유산은 총성이 아니라 원고 속 문장이었을지 모른다. 그것이 바로 미완으로 남은 ‘동양평화론’이다.
하얼빈 의거 뒤, 그는 법정과 심문석에서 숨김없이 말했다. 이토를 처단한 것은 복수가 아니라 조선의 독립과 동양의 평화를 위한 행위였다고. 그가 바라본 동양은 분열과 갈등 속에 있었고, 그 틈을 타 서양 열강은 군사와 자본으로 아시아를 나누어 먹고 있었다. 일본은 그 틈을 메우기는커녕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조선을 병합하고, 전쟁을 부추기며 동양을 더 깊은 혼란 속으로 몰아넣었다. 안중근이 보기에 평화를 방해하는 가장 큰 걸림돌은, 겉으로는 연합을 말하면서 실제로는 분열을 심화시킨 이토였다.
그래서 그의 평화론은 이상이 아니라 계획이었다. 한·중·일이 공동 군사 방위를 세우고, 통화와 관세를 통일하며, 청년들이 서로의 나라에서 배우고 교류하는 시스템을 제안했다. 분쟁은 무력 대신 협상으로 해결하자는 발상도 담았다. 오늘날로 치면 유럽연합과 유엔을 합쳐 놓은 듯한 구상이었다. 한 나라만의 독립이 아니라, 세 나라 모두가 함께 살아남는 길을 설계한 것이다.
안타깝게도 ‘동양평화론’은 끝까지 쓰이지 못했다. 사형 집행일이 다가오며 붓은 멈췄다. 지금 우리가 읽을 수 있는 건 편지와 초안, 심문 속 발언이 전부다. 그럼에도 거기엔 100년이 넘은 시간에도 여전히 살아 있는 질문이 있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위해 함께할 수 있는가.
1910년 3월 26일, 그는 형장으로 걸어나가며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다. 서른한 해의 짧은 생은 총성과 함께 시작되어, 평화를 향한 문장으로 끝났다. 오늘 광복절을 맞아 다시 그를 떠올리는 건, 단지 과거를 기념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와 독립이, 그가 말한 ‘함께 만드는 평화’ 위에 서 있는지 돌아보기 위해서다. 하얼빈의 총성과 뤼순 감옥의 붓끝이 전한 메시지는 단순하다. 진정한 광복은 서로를 향한 연대와 이해 속에서만 완성된다는 것. 그 메시지가 오늘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면, 광복은 끝난 것이 아니라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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