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작성일 : 2025-08-20 | 수정일 : 2025-08-20 | 조회수 : 26 |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과 함께 다시금 조명받는 작품이 있다. 바로 한강의 장편소설 『채식주의자』다. 2016년 인터내셔널 부커상 수상으로 한국 문학을 세계 문단에 각인시킨 이 작품은 1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강렬한 울림을 남긴다.
『채식주의자』의 주인공 영혜는 어느 날부터 고기를 거부하면서 가족과 갈등을 빚는다. 그러나 소설은 영혜의 목소리를 직접적으로 들려주지 않는다. 남편, 형부, 언니의 시선을 통해서만 영혜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 구조는 ‘주체로서의 여성’이 부재한 사회 현실을 비추는 동시에, 그녀가 육체를 거부하며 식물이 되고자 하는 극단적 상상력의 비극성을 더 선명히 드러낸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 가부장적 권위에 맞서는 무언의 저항은 단순한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우리 사회 깊은 곳에 자리한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다. 영혜의 침묵은 오히려 가장 강렬한 외침이 된다.
『채식주의자』는 발표 이후 국내에서 100만 부 가까운 판매고를 올렸을 뿐 아니라, 세계 문학계에서도 섬뜩한 아름다움을 구현한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탄탄하고 정교하며 충격적인 작품으로, 독자들의 마음에 오래 남을 것이다” (인터내셔널 부커상 심사평)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산문과 믿을 수 없을 만큼 폭력적인 내용의 조합이 충격적이다” (가디언)
이처럼 아름다움과 폭력, 현실과 초현실의 경계를 교묘히 넘나드는 문체는 한강만의 미학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미학은 스페인 산클레멘테 문학상 수상 등으로 이어지며 국제적 공감을 이끌어냈다.
한강의 문학은 종종 ‘고통의 미학’이라 불린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고통의 재현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근원과 경계를 탐색하려는 시도다. 『채식주의자』 속 영혜가 식물이 되고자 한 것은 현실의 부정이 아니라 새로운 존재 방식에 대한 열망이기도 하다.
노벨 문학상 수상은 한강 개인의 성취를 넘어 한국 문학이 세계와 공명할 수 있음을 증명한다. 이제 우리는 『채식주의자』를 단순히 한 편의 소설로 읽을 것이 아니라, 시대를 관통하는 질문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인간은 어디까지 인간일 수 있는가? 자유는 어떻게 가능하며, 폭력은 어떻게 반복되는가?
『채식주의자』는 한강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급진적이고 가장 보편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한강은 우리에게 익숙한 일상을 낯설게 뒤집어 보여주며, 그 속에서 인간 존재의 불가피한 모순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드러낸다. 노벨 문학상을 계기로, 이제 우리는 다시 한 번 이 작품을 읽어야 할 시점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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