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초 작성일 : 2026-05-08 | 수정일 : 2026-05-08 | 조회수 : 1007 |

[서평] 『공통된 것 없는 공동체』: 한국 민주주의의 ‘불가능성’을 직시하다 문화경제신문사 기자 진재근
박이대승 정치철학자, 한국 사회의 근본적 균열을 파헤치며 새로운 전략 모색을 제안하다
박이대승 정치철학자의 신작 『공통된 것 없는 공동체』(오월의봄 펴냄)는 2024년 12월 3일 발생한 쿠데타 시도를 계기로 한국 민주주의의 근본적인 위기를 진단하는 정치철학적 비평서다.
책은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다섯 가지 징후—복수 극단으로 기울어진 가해자-피해자 도식, 노골적인 불평등 지지, 전진을 멈춘 민주주의, 개념적 언어·규칙의 붕괴, 반이성과 비정상성—를 분석하며, 한국 민주주의의 ‘불가능성’을 절망이 아닌 새로운 전략 모색의 객관적 조건으로 삼아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 책은 단순한 진단을 넘어, 독자들에게 한국 사회를 규정하는 구조, 문화, 언어의 문제를 깊이 사유하고 책임 있는 자세로 민주주의를 재구성할 것을 촉구한다.
2024년 12월 3일, 한국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쿠데타 시도는 단순한 정치적 해프닝을 넘어 한국 민주주의의 근본적인 취약성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해석되고 있다. 박이대승 정치철학자는 그의 저서 『공통된 것 없는 공동체』(오월의봄 펴냄)를 통해 이 사건을 한국 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불가능성’을 직시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이대승 교수는 책의 서두에서 한국 사회를 “공통된 것 없는 공동체”이자 “민주주의 없는 민주주의 국가”라고 명명하며 문제의식을 제기한다. 형식적으로는 민주주의 국가의 요건을 갖추고 있는 듯 보이지만, 그 근간을 이루는 공통의 규칙, 가치, 그리고 시민이라는 개념 자체가 부재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진단은 한국 민주주의가 겪고 있는 총체적인 위기를 ‘증상’이 아닌 ‘본질’에서부터 파고든다.
“2024년 12월 3일의 쿠데타 시도는 예외적인 해프닝이 아니라 한국 민주주의의 비정상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사건이었다.” (p.6)
책은 총 5부에 걸쳐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다섯 가지 핵심적인 징후를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첫째, 대중문화와 정치를 관통하는 ‘복수극’의 논리다. 저자는 세월호 참사, 미투 운동 등 굵직한 사건 이후 ‘가해자 특정과 강력 처벌’만이 정의의 전부인 것처럼 소비되는 현실을 비판하며, 이는 “청산 불가능한 부채를 돈 갚듯 정리하려는 상품 교환 논리의 확장”이라고 지적한다. 피해자의 고통과 가해자의 고통을 등가로 상쇄할 수 있다는 발상, 그리고 관객의 분노가 해소되면 정의도 끝났다고 믿는 심리는 공동체의 책임을 희미하게 만들고 사회 구조를 바꾸려는 상상력을 마비시킨다.
“가해자가 강력히 처벌받으면 그것으로 정의가 실현될 것이라는 발상은 얼마나 무책임한가?” (p.117)
둘째, 한국 사회는 ‘인간의 등급 나누기’에 특화되어 있으며, 다수가 노골적으로 불평등을 지지하는 현실을 파헤친다. 사람들은 ‘나만 위로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는 위치’를 욕망하며, 공정과 능력주의마저 그 욕망의 언어로 포섭된다. 소득, 자산, 고용형태, 성별, 인종, 신체 조건의 격차는 곧바로 정치적 불평등으로 이어지며, “그 어떤 시민도 타인의 지배에 종속되지 않는 상태”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는 사실상 작동하지 않는다. 저자는 이를 “제도적 문제”를 넘어 “문화적 습관”으로 규정하며, 모든 개인이 서로 다르지만 인간과 시민으로서 평등하다는 민주주의의 가장 단순한 문장이 공허한 구호가 되었음을 통렬하게 지적한다.
“한국사회는 인간의 등급을 나누는 데 특화되어 있다.” (p.206)
셋째, 한국 민주주의는 군부 독재 이후 진정한 ‘전진’을 멈춘 상태라고 진단한다. 서구 민주주의가 ‘인민의 자기통치’를 목표로 삼는다면, 한국 민주주의는 ‘독재 반대’와 ‘대의제 도입’ 자체를 목표로 삼은 채 멈춰 섰다는 것이다. 저자는 한국에 이식된 민주주의와 ‘서구 문화’가 실제 서구인이 말하는 그것과 다르며, 한국인이 상상한 ‘한국식 서구’일 뿐이라고 말한다. 이로 인해 수단(선거, 대의제)을 목적화하고, 인민의 자기통치라는 본래 목적을 상실한 ‘수입 민주주의’의 한계를 지적한다.
“한국에 ‘서구 문화’를 이식한다는 것은 결국 한국 문화의 창조물을 한국에 설치한다는 말이다.” (p.291)
넷째, 민주주의 공동체를 지탱하는 근본 동력인 ‘개념적 언어’의 부재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한국 사회에서는 행위 규칙이 권리의 체계보다 전통, 다수의 선호, 권력관계에 의해 우선시된다. 이로 인해 노동자의 파업권보다 시민의 불편이, 차별받지 않을 권리보다 모호한 ‘사회적 합의’가 더 중요하게 취급되는 역전 현상이 발생한다. 헌법적 개념조차 이론적 이해 없이 남용되며, ‘갑질’, ‘금수저’, ‘안전불감증’과 같은 반개념적 언어가 공론장을 뒤덮는다. 명확한 개념과 규칙이라는 합리적 토론의 최소한 토대가 붕괴된 상태인 것이다.
“한국사회의 행위 규칙은 권리의 체계를 따르지 않는다. 전통적 습관, 다수의 선호나 이익, 권력관계 등이 권리보다 우선한다.” (p.312–313)
마지막으로, 12·3 내란 사태를 ‘외부 병원체의 침입’이 아닌, 한국 민주주의 내부의 비정상성을 노골화한 사건으로 읽는다. 저자는 박근혜와 윤석열을 지도자로 선택한 한국 시민들의 민주주의적 투표 행위가 만들어낸 결과임을 강조하며, 이러한 사건은 한국 민주주의 체제 자체가 자기 유지에 필요한 정상적인 조건을 결여하고 있음을 증명한다고 말한다. 극우 진영에만 국한되지 않는 ‘반이성’—음모론, 무속, 감정 정치—은 한국 사회 전반을 관통하는 집단 감정의 논리이며, 이는 한국 민주주의의 ‘불가능성’을 절망이 아닌, 새로운 전략을 모색할 ‘객관적 조건’으로 삼아야 한다고 제안한다. 특히 “개념적 언어를 문화적 헤게모니로 구축하는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윤석열의 쿠데타 시도는 … 외부 병원체의 침입도 아니다. 애초 (박근혜와) 윤석열을 지도자로 뽑은 것은 한국 시민들의 민주주의적 투표였다.” (p.441)
『공통된 것 없는 공동체』는 한국 민주주의 위기를 다룬 수많은 진단서와 차별화된다. 감정적 개탄이나 단순한 개혁 처방을 넘어, 구조, 문화, 언어를 끝까지 파고드는 밀도 높은 분석이 돋보인다. 특히 ‘공통된 것 없음’, ‘민주주의 없는 민주주의 국가’, ‘불가능한 민주주의’와 같은 표현은 독자들이 막연하게 감지하고 있었지만 언어로 붙잡지 못했던 감각을 명료하게 제시한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저자가 한국 민주주의의 불가능성을 ‘절망’이 아닌 ‘전략의 객관적 조건’으로 처리하자고 제안하는 지점이다. “이대로면 망한다”는 위기 서사에서 벗어나, “애초에 이런 조건 위에서만 움직일 수 있다면, 어떤 전략이 가능한가?”라는 냉정한 질문을 던진다. 이는 독자들에게 정치적 ‘자기 비판’과 ‘사유의 훈련’을 동시에 요구하는 강력한 메시지다.
이 책은 촛불 이후 한국 민주주의의 방향에 의문을 느끼는 시민·활동가, 페미니즘, 노동, 인권, 차별금지법, 이주·난민 문제 등을 현장에서 다루는 실천가와 연구자, 정치철학·민주주의 이론·한국 현대사를 공부하는 학생, 그리고 “우리는 왜 이렇게 분노와 혐오에 쉽게 휩쓸리는가?”를 고민하는 모든 독자에게 일독을 권한다.
이 책은 첫째, 막연한 불편함과 분노를 ‘공통된 것 없음, 반이성, 반개념적 언어, 등급 사회’와 같은 정교한 개념으로 사유할 수 있는 언어를 제공한다. 둘째, 추상적인 정치철학을 넘어 세월호, 미투, 12·3 내란 사태 등 구체적 사건을 통해 생각이 현실을 바꾸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셋째, 민주주의를 ‘제도’가 아닌 ‘문화·습관·언어·규칙의 체계’로 이해하게 함으로써, 학교, 마을, 시민단체 등에서 민주주의 교육의 기본 텍스트로 활용하기에 적합하다.
한국 민주주의를 낙관도 비관도 아닌, 차갑지만 책임 있는 시선으로 다시 보고 싶은 분들께 『공통된 것 없는 공동체』는 필독서가 될 것이다.
(jinzao77@naver.com)
책사인중모(책을사랑하는인천중구모임) 대표
한국웰다잉교육문화연구원 사무국장
한국민들레작은도서관 운영위원장
신포동 주민자치회 마을환경분과위원회 위원
전) 늘편한요양원 관리책임자
전) 송파노인종합복지관 노인돌봄사업 서비스관리자
전) 요한노인복지센터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