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초 작성일 : 2025-12-05 | 수정일 : 2025-12-05 | 조회수 : 993 |

핵심 요약
故 이태석 신부는 의사 겸 사제로 아프리카 남수단 톤즈에서 헌신적인 봉사를 펼치며 '수단의 슈바이처'로 불렸습니다. 그는 병원 건립, 의료 활동, 교육 및 브라스 밴드 결성 등 다양한 활동으로 현지 주민들에게 희망을 전했습니다. 대장암 투병 끝에 선종했지만, 그의 숭고한 삶은 다큐멘터리 영화와 기념 사업을 통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경계를 넘어선 헌신, 메마른 땅에 피운 희망의 꽃 故 이태석 신부 (세례명: 요한). 의사이자 사제로서 아프리카 남수단의 오지 '톤즈'에서 10년 가까이 땀과 눈물로 사랑을 실천하며 '수단의 슈바이처', '파더 쫄리'라 불렸던 그의 삶은, 2009년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울지마 톤즈'를 통해 한국 사회에 깊은 감동과 울림을 선사했습니다. 1962년 부산에서 태어나 2010년 만 47세의 젊은 나이로 선종하기까지, 이태석 신부가 남긴 숭고한 발자취를 따라가 봅니다.
1962년 9월 19일, 이태석 신부는 10남매 중 아홉 번째로 태어났습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학업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던 그는 경남고등학교와 인제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며 의사의 꿈을 이뤘습니다. 군의관 복무까지 마친 후, 그는 따뜻한 마음으로 이웃을 돕는 의사의 길을 걷는 동시에, 더 깊은 사랑을 실천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가톨릭 신앙에 귀의했습니다.
의사로서의 삶에 만족하지 않고, 그는 자신의 재능과 소명을 더 넓은 세상에 나누고자 살레시오 수도회에 입회했습니다. 광주가톨릭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한 후 2001년, 39세의 나이로 사제 서품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이 아프리카에 있음을 직감했습니다.
이태석 신부는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에게 해주는 것이 내게 해주는 것과 다름없다"는 성경 구절을 좌우명으로 삼았습니다. 이는 그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헌신의 정신을 보여줍니다.
2001년, 사제 서품 후 이태석 신부는 분쟁과 가난, 질병이 만연했던 아프리카 남수단의 톤즈로 향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단순히 영혼을 치유하는 사제가 아니라, 육체의 고통까지 어루만지는 의사이자, 미래를 밝히는 교육자, 그리고 희망을 노래하는 음악가였습니다.
이태석 신부는 톤즈에 '돈보스코 미션 병원'을 설립하고, 매일 200~250명에 달하는 환자들을 돌봤습니다. 오염된 물로 인한 콜레라, 말라리아 등 치명적인 전염병과 심각한 영양실조 환자들을 치료했으며, 낡은 차를 타고 먼 숲 속 마을까지 이동 진료를 다니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인근 한센인 마을까지 찾아가는 그의 발걸음에는 따뜻한 사랑이 담겨 있었습니다.
주요 진료 활동
병원 건립 및 상시 운영 (돈보스코 미션 병원)
일일 평균 200~250명 환자 진료
콜레라, 말라리아 등 전염병 치료
영양실조 환자 집중 관리
이동 진료를 통한 원거리 마을 및 한센인 마을 방문
가난과 싸우는 아이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학교를 세우고 직접 수학을 가르치며 교육열을 북돋았습니다. 무엇보다 그의 잊지 못할 업적 중 하나는 바로 '브라스 밴드(Brass Band)' 결성이었습니다. 한국에서 후원받은 트럼펫, 플루트 등 악기들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며, 아이들은 "총과 칼을 녹여 악기를 만들면 좋겠다"는 순수한 소망을 이야기했습니다. 이태석 신부는 음악을 통해 아이들의 마음속 깊은 상처를 치유하고, 억압된 현실 속에서도 아름다운 꿈을 꿀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었습니다.
아이들의 말에 담긴 "총과 칼을 녹여 악기를 만들면 좋겠다"는 소망은 전쟁으로 피폐해진 땅에서 평화와 희망을 갈망하는 톤즈 주민들의 절실한 마음을 대변했습니다.
이태석 신부는 톤즈에서의 헌신적인 삶을 이어가던 중, 2008년 11월 휴가차 귀국하여 건강검진을 받았습니다. 그 결과, 그는 대장암 말기라는 충격적인 진단을 받게 됩니다. 2010년 1월 14일, 향년 47세의 젊은 나이로 그는 마지막 숨을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삶은 그렇게 멈추지 않았습니다.
톤즈 주민들은 그에게 '요한'이라는 세례명에 성을 붙여 발음하기 쉬운 '파더 쫄리(Father John Lee)'라고 불렀습니다. 이 애칭은 그의 따뜻함과 친근함을 나타내며, 주민들과의 깊은 유대감을 보여줍니다. 그의 헌신은 다큐멘터리 영화 '울지마 톤즈'를 통해 한국과 전 세계에 알려지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나눔의 가치를 일깨워주었습니다.
⚠️ 이태석 신부의 숭고한 뜻을 잇는 노력
그의 헌신적인 삶은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그의 제자 중 일부는 한국 유학 및 '수단어린이장학회'의 지원을 받아 한국에서 의사가 되었습니다. 이들은 현재 남수단으로 돌아가 스승의 뜻을 이어받아 현지 의료 발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 역시 남수단 수도 주바에 '이태석 기념 의과대학병원' 건립을 지원하는 등 그의 숭고한 뜻을 기리는 사업을 추진하며 그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활동 지역: 남수단의 오지 마을인 톤즈 (Tonj)
기간: 2001년 사제 서품을 받은 후부터 2008년 귀국 전까지 약 8년간 활동하셨습니다.
활동 내용:
병원(돈보스코 미션 병원)을 설립하고 수많은 환자를 치료했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학교를 짓고 직접 교육했습니다. 마을에 브라스 밴드를 만들어 희망을 심어주었습니다.
이태석 신부님은 특히 내전과 빈곤, 질병으로 고통받던 톤즈 마을 주민들과 함께 생활하며 '파더 쫄리'라고 불릴 정도로 깊은 사랑과 신뢰를 받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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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컬처·경제 전문지로/ 결혼상담사 자격증 창업과정 /결혼정보회사 (주)두리모아 CEO/시니어 모델, /뮤지컬 배우/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 /철학 품격을 지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