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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관계의 징검다리, 최서면 선생의 헌신적인 삶

권승렬 기자 (srkwonk2@naver.com)


한일관계의 징검다리, 최서면 선생의 헌신적인 삶

권승렬 기자 (srkwonk2@naver.com)




최초 작성일 : 2026-01-29 | 수정일 : 2026-01-29 | 조회수 : 1004


한일관계의 징검다리, 최서면 선생의 헌신적인 삶
핵심 요약
최서면 선생은 1928년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나 파란만장한 삶 속에서도 한일관계 연구에 헌신했습니다. 일본 망명 중 한국사 연구에 매진하여 안중근 의사 옥중 자서전 필사본 발견 등 역사적 성과를 남겼습니다. 1988년 귀국 후에도 한일관계 발전을 위한 사상가로서 활동하며 화합을 강조했습니다.

격동의 시대를 살아내며 한반도와 일본을 넘나들며 양국의 관계 정립에 평생을 헌신한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최서면 선생입니다. 1928년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부친을 여의고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란 그의 삶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격동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으며 그는 역사와 학문에 매진하여 오늘날까지도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특히 그는 한일 관계를 화합과 상호 이해의 관점에서 접근하며, 한국의 역사적 진실을 발굴하고 알리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험난했던 성장 과정과 역사적 각성 🚀

1928년 음력 4월, 강원도 원주에서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난 최서면 선생은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부친을 여의고 홀어머니 슬하에서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가정 형편이 넉넉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6촌 형인 최규하 대통령의 집에서 원주 보통학교를 다니며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1945년 연희전문 문과에 입학한 그는 당시 민족 운동에 깊숙이 관여하며 한독당 산하 대한학생연맹위원장으로서 김구 선생을 돕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습니다. 그러나 1947년 장덕수 암살 사건에 연루되어 무기수로 복역하는 시련을 겪기도 했습니다.

시련 속에서 싹튼 봉사와 신학의 꿈

이시영 부통령의 도움으로 1949년 형 집행정지로 석방된 후, 최 선생은 부산에서 6.25 전쟁으로 고아가 된 100여 명의 아이들을 돌보는 '성(聖) 방지거(方濟各, 프란치스코) 집'을 운영하며 봉사의 삶을 살았습니다. 이 인연으로 노기남 대주교의 부름을 받아 천주교 총무원 사무국장이 되어 사무총장 장면 박사를 도왔습니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의 정적이던 장면 부통령과 관련된 체포 위기에 직면하자, 그는 로마로 가서 신학을 공부할 결심을 하게 됩니다.

1957년, 천주교 성직자로 변장한 최 선생은 미군 군용기를 얻어타고 일본으로 밀항했습니다. 로마행을 기다리는 동안, 그는 소일삼아 일본의회도서관과 외무성 외교사료관 등에서 방대한 자료를 접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일본인보다 한국에 대해 더 모르는 자신의 현실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로마행을 포기한 채 본격적인 한일관계 연구에 뛰어들게 됩니다. 이것이 그의 삶의 궤적을 송두리째 바꾸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역사적 진실을 발굴한 재일 한국인 학자 🚀

일본에서의 학문 연구는 최서면 선생의 삶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1969년, 그는 일본 게이오대학 설립자인 후쿠자와 유키치의 딸의 도움을 받아 한국 관련 연구를 위한 학술 모임을 개설했습니다. 이 연구 모임은 그의 학문적 역량을 집약하는 장이 되었으며, 여러 중요한 역사적 자료를 발굴하는 성과를 이루어냈습니다.

재일 한국인 역사 연구가 B씨는 "최서면 선생의 발굴은 한국사 연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다"고 평가했습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성과는 안중근 의사의 옥중자서전 필사본을 최초로 발견하여 공개한 것입니다. 이는 안중근 의사의 정신과 사상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되었으며, 그의 역사적 위상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임진왜란 당시 함경도 지방 의병들의 활약상을 기록한 문헌을 발견하여 국내로 반환되도록 주선하는 등, 한국사의 중요한 기록들을 복원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최서면 선생은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의 부당성을 지적하기 위해 동아시아의 고지도를 수집하고 수많은 관련 자료를 발굴, 소개하는 작업도 병행했습니다. 그는 김구, 장면, 박정희, 김대중 등 당대의 한국 지도자들은 물론, 일본의 기시 노부스케, 후쿠다 다케오 등 정계 거물들과도 깊이 교류하며 양국의 정치, 외교, 문화 전반에 걸쳐 폭넓은 이해와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한일 화합을 꿈꾼 사상가로서의 삶 🚀

수십 년간 일본에서 활동하던 최서면 선생은 1988년 영구 귀국하여 서울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후 그는 '을'을 개설·운영하며 한일 관계 발전을 위한 사상가(thought leader)로서의 족적을 남겼습니다. 그는 끊임없이 양국 간의 이해와 협력을 강조하며, 미래지향적인 관계 구축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 최서면 선생의 가르침
최서면 선생은 '일본과 화(和)를 잃어서는 안 된다'는 신숙주의 유언과 '친일파는 많을수록 좋다'는 김구 선생의 말씀을 잊지 말 것을 당부했습니다. 이는 과거의 청산을 넘어, 현실적인 국익과 미래를 위한 관계 설정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그는 과거의 역사적 갈등에 매몰되기보다는, 상호 존중과 이해를 바탕으로 미래를 함께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점을 역설했습니다. 그의 이러한 행보는 단순한 학자나 연구자를 넘어, 한국과 일본 간의 관계를 진정으로 고민하고 해결책을 모색했던 통찰력 있는 리더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2020년 나남출판사가 출간한 '최서면에게 듣다'는 그의 삶과 철학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기록으로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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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승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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