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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경제신문

간송 전영필 (全永弼, 1901~?) - 독립운동가
전영필 (全永弼, 1901~?) - 독립운동가
강규남(발행인 ,대표이사) 기자 (acenews001@gmail.com)


간송 전영필 (全永弼, 1901~?) - 독립운동가
전영필 (全永弼, 1901~?) - 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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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작성일 : 2025-12-05 | 수정일 : 2025-12-05 | 조회수 : 998


간송 전영필 (全永弼, 1901~?) - 독립운동가
핵심 요약
이 기사는 '전영필'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두 인물, 독립운동가 전영필과 문화재 수집가 간송 전형필을 구분하여 소개합니다. 독립운동가 전영필은 교사, 교육 행정가로 활동했으며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훈했습니다. 간송 전형필은 문화재를 지켜낸 '문화재 독립운동가'로 불리며, 국보 《훈민정음 해례본》을 수호하고 간송미술관을 설립하는 등 민족문화 수호에 헌신했습니다.

'전영필(全永弼)'이라는 이름은 종종 혼동을 불러일으키곤 합니다. 검색 결과에는 독립운동가로 활동한 전영필과, 일제강점기 우리 문화재를 수호한 '문화재 독립운동가'로 불리는 간송 전형필(澗松 全鎣弼)이라는 두 인물이 나란히 등장합니다. 두 분 모두 격동의 시대에 각자의 방식으로 민족의 얼을 지키고자 노력했으나, 활동 분야와 업적은 뚜렷하게 구분됩니다. 본 기사에서는 이 두 인물에 대한 사실 관계를 명확히 구분하고, 특히 독립운동가 전영필에 초점을 맞춰 그의 생애와 업적을 조명하고자 합니다.

독립운동가 전영필: 교육자로서의 삶과 헌신

독립운동가 전영필(全永弼, 1901년 9월 14일 ~ ?)은 충청남도 부여 출신으로, 1920년 충남임시교원양성소를 졸업한 후 보통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교육 현장에서 민족의 미래를 책임지는 교사로서의 소임을 다했습니다. 그의 학구열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1927년에는 일본 도쿄의 다이토분카학원(大東文化學院)에 입학하여 근대 학문을 탐구했습니다. 이러한 교육에 대한 깊은 열정과 끊임없는 자기 계발은 광복 후 그가 교육계에서 더욱 폭넓은 역할을 수행하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교육계의 중추적 역할 수행

광복 이후, 전영필 선생은 대한민국의 교육 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그는 대구사범학교 교장을 역임하며 교육 기관의 운영과 발전에 힘썼으며, 경상북도 교육회 회장으로서 지역 교육계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정책 수립에 기여했습니다. 또한, 서울시 교육위원과 문화위원으로서 교육 및 문화 정책 전반에 걸쳐 전문성을 발휘하며 국가 발전에 필요한 인재 양성과 문화 진흥을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의 교육 행정가로서의 경력은 단순한 직책 수행을 넘어, 국가 재건과 미래 세대 육성에 대한 헌신적인 자세를 보여줍니다.

후대 평가 A씨는 "전영필 선생의 삶은 일제강점기 하에서도 굴하지 않고 교육을 통해 민족의식을 고취하려 했던 숭고한 정신을 보여준다"고 평가했습니다.

이러한 그의 헌신과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에 건국포장을 수여하였고, 1990년에는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며 그의 독립운동가로서의 숭고한 정신과 업적을 기렸습니다. 비록 그의 생몰 연대가 명확히 기록되지 않았으나, 그의 이름과 행적은 대한민국 교육사와 독립운동사에 귀감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간송 전형필: 문화재 수호, '문화재 독립운동가'

이름이 유사하여 종종 혼동되는 인물 중 한 명은 바로 '간송(澗松)' 전형필(全鎣弼, 1906년 7월 29일 ~ 1962년 1월 26일)입니다. 그는 일제강점기라는 국가적 위기 상황 속에서 우리 민족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지켜낸 인물로, '문화재 독립운동가'라는 특별한 칭호로 불립니다. 막대한 재산을 바탕으로 일본으로 유출되거나 훼손될 위기에 놓인 한국의 서화, 도자기, 서적 등 국보급 문화재를 적극적으로 수집하고 보존하는 데 평생을 바쳤습니다.

민족문화 수호의 상징, 《훈민정음 해례본》

간송 전형필 선생의 업적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국보 제70호인 《훈민정음 해례본》을 거금을 주고 입수하여 일제의 감시와 유출 시도로부터 지켜낸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문화재 한 점을 소장한 것을 넘어, 우리 민족의 고유한 문자를 지켜낸 역사적 의미를 갖습니다. 이 외에도 그는 수많은 국보급 문화재를 사들여 국내에 보존함으로써 민족의 문화적 정체성을 수호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간송 전형필 선생의 주요 문화재 보존 활동
  •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유출 위기에 처한 다수 국보급 문화재 확보
  • 국보 《훈민정음 해례본》 확보 및 보존
  • 국보 《청자상감운학문매병》 등 명품 도자기 수집
  • 김홍도, 신윤복 등 조선시대 유명 화가들의 작품 다수 보존

그는 이러한 문화재를 일반 대중에게 공개하고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1938년,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 근대식 박물관인 보화각(현 간송미술관)을 설립했습니다. 이는 당시 문화 불모지였던 우리 땅에 문화유산의 가치를 알리고 후대에 계승하려는 그의 깊은 뜻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또한, 1940년에는 민족 사학인 보성학교가 폐교될 위기에 처하자 이를 인수하여 교육가로서의 면모도 보였습니다.

간송 전형필 선생의 숭고한 문화 수호 정신과 업적은 2014년 금관문화훈장 추서라는 영예로 이어졌습니다. 그는 단순한 문화재 수집가를 넘어,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자긍심과 문화적 뿌리를 지키려 했던 진정한 애국자였습니다.

두 '전영필'의 숭고한 족적

독립운동가 전영필 선생과 문화재 독립운동가 간송 전형필 선생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민족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전영필 선생은 교육과 행정을 통해 국가의 기틀을 다지고 미래를 준비하는 데 힘썼다면, 간송 전형필 선생은 우리 민족의 고귀한 문화유산을 보존하여 민족의 자긍심을 지키는 데 온 힘을 기울였습니다. 두 분의 이름이 비슷하다는 점 때문에 혼동이 있을 수 있으나, 그들의 숭고한 족적은 결코 잊혀서는 안 될 우리 역사의 소중한 부분입니다.

💡 용어 설명: 건국훈장 애국장이란?
대한민국의 독립에 공헌한 유공자에게 수여되는 최고 등급의 훈장 중 하나입니다. 독립운동 분야에서 가장 영예로운 포상으로 여겨집니다.
💡 용어 설명: 금관문화훈장이란?
문화예술 발전에 탁월한 공적이 있는 사람에게 수여되는 훈장으로, 문화훈장 중 가장 높은 등급입니다.

이 두 인물의 삶을 통해 우리는 격동의 시대 속에서도 민족의 정신과 미래를 지키려 했던 다양한 형태의 헌신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후세는 이들의 희생과 노력을 기억하고 계승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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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규남(발행인 ,대표이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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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컬처·경제 전문지로/ 결혼상담사 자격증 창업과정 /결혼정보회사 (주)두리모아 CEO/시니어 모델, /뮤지컬 배우/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 /철학 품격을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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