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수 제21대 대통령 후보의 배우자인 설난영 여사가 남편의 정치 여정을 헌신적으로 내조하며 쌓아온 생애가 재조명받고 있습니다. 설 여사의 삶은 단순한 조력을 넘어 한 명의 동지로서, 굳건한 버팀목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왔음을 보여줍니다.
1953년 전라남도 고흥에서 태어나 순천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한 설난영 여사는 대학 진학을 위해 서울로 상경했습니다. 1977년 구로공단 세진전자에 입사하며 노동 현장에 발을 들였고, 당시 한일도루코 노조위원장이었던 김 장관과 교류하며 인연을 맺었습니다. 삼청교육대 관련 수배 중이던 김 장관이 설 여사의 자취방에 도피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더욱 깊어졌고, 1981년 결혼에 이르렀습니다.
“남편이 투옥되었을 때 유시춘 등과 함께 '구속자가족협의회'를 결성해 수감자들의 상황을 알리고 지속적으로 석방을 요구했습니다.”
설 여사의 내조는 남편의 투옥 및 도피 시절, 험난했던 노동운동의 시기를 묵묵히 뒷받라지하며 빛을 발했습니다. 수감된 남편을 위해 ‘구속자가족협의회’를 결성하여 상황을 알리고 석방을 촉구하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펼쳤습니다. 또한, 남편이 노동운동에 전념하는 동안에는 서점을 운영하며 가계를 책임졌습니다. 어린 딸의 신발주머니에 노동자신문을 몰래 넣어 배포하다 경찰의 검문을 피하는 등, 남편을 돕기 위한 그녀의 노력은 헌신 그 자체였습니다.
설 여사 본인 역시 세진전자 노조위원장을 지낸 당찬 노동운동가였습니다. 노조 활동 중 남편과 함께 구치소에 구류되기도 했으며, 경찰의 단속을 피해 2층에서 뛰어내리다 허리 부상을 입는 등 고초를 함께 겪었습니다. 이러한 경험들은 두 사람을 더욱 단단하게 묶어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94년 김 장관이 민주자유당 입당을 고려할 당시, 설 여사는 “정치는 진흙탕”이라며 만류하기도 했으나, 이후 남편의 정치 행보를 묵묵히 지지하는 든든한 동반자로 변모했습니다. 특히 제21대 대통령 선거 유세에서는 직접 대중 앞에 나서 찬조 연설을 하고 전국을 누비며 남편의 청렴함과 정직함을 호소하는 ‘근검절약형 내조’를 실천했습니다. 그는 당시 “100조 원을 줘도 남편과 바꾸지 않겠다”고 말할 만큼 김 장관에 대한 깊은 신뢰와 애정을 드러냈습니다.
설난영 여사의 헌신적인 내조는 김문수 후보의 정치 역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부분으로, 그의 삶의 궤적과 함께 깊은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